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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호 IBN한국방송 대표 “시민에게 참된 뉴스 전하고 파” - PC통신 선구자서 언론사 대표가 되기까지 인생스토리
  • 기사등록 2017-03-28 14: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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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스마트폰. 우리는 4인치 에 불과한 이 작은 단말기로 전세계 인터넷 통신과 정보검색이 가능한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정보통신산업이 제대로 꽃을 피운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84년 5월 데이콤의 ‘천리안’에서 전자사서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PC통신이 도입된 것이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시초다.

지금의 우리가 ‘초고속인터넷’이란 과실을 맛있게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내 정보통신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송종호 IBN한국방송 대표(73세)의 숨은 공도 빼놓을 수 없다.

▲PC통신 활성화에 일생을 바치다

송 대표는 국내 PC통신업계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흔히 월남전으로 회자되는 베트남 전쟁에 통신장교로 참전한 국가유공자이자, 전산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정통 학자 출신이다.

송 대표는 ‘PC통신’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지난 1987년 DSNB BBS(동서남북 사설전자게시판)을 개통한 이래 줄곧 국내 PC통신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1992년에는 전국 최초로 BBS 모임인 부산PC통신협회를 조직했다.

그는 “교수라는 본업이 있었지만 국내 정보통신 활성화를 위해 기꺼이 내 한 몸 바쳐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지역의 15개 BBS 모임을 중심으로 부산PC통신협회를 만들었다”며 “이후 전국에서 수많은 엔드 유저(end user, 일반 PC사용자)가 참여해 회원수가 30만명을 넘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PC통신이란 개인용 컴퓨터(PC)와 다른 개인용 컴퓨터를 통신회선으로 연결해 자료를 주고 받는 것을 말한다. BBS는 유닉스 프로그램으로, 하나의 방송국 개념으로 통용된다.

송 대표는 BBS 운영 초기 겪었던 일화도 들려줬다. 당시 BBS를 운영하려면 프로그램 하나당 1800만원이 필요했다. 송 대표는 안철수(보안프로그램 V3 개발) 씨와 이찬진(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 한글 개발) 씨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있는 A소프트웨어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유닉스를 지원받았다.

부산PC통신협회는 서울과 대전, 포항, 광주, 대구, 울산 등 전국에 9개의 지부를 둔 조직으로 점차 확대됐다. 송 대표는 각 지부에 직접 가서 BBS 운영에 필요한 유닉스를 깔았고, 지역 방송국과 매칭도 시켰다.

일례로 대전MBC문화방송에서 밤 12시에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의 경우 엔드 유저들이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듣고 싶다’는 글을 올리면, 담당 PD가 음반을 찾아 바로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부산CBS 라디오프로그램 ‘꿈과 음악사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음악신청을 받았다.

송 대표는 “당시가 1992~93년인데 라디오프로그램에서 PC통신으로 음악신청을 받아 틀어주는 것은 전 세계에서 최초의 사례”라며 “93년에는 전국 최초로 BBS에서 교통정보를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이윤보단 정보통신 활성화에 초점

1994년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컴퓨터관련 전시회인 ‘세크(SEK) PUSAN’을 전자신문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송 대표는 6~7회 이상 SEK전시회 연 서울처럼 부산에서도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BBS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김상영 전자신문사 사장을 만나 전시회를 제안해 성사시켰다.

부산경남지역 육교에 SEK전시회 홍보간판 400개를 세우는 등 홍보에 주력한 결과 무려 60만 명의 인파가 전시회를 찾았다고 한다. 송 대표는 “5년간 SEK전시회 홍보를 맡았고, 매장 안 부스에서 PC통신 교육과 시연을 했다”며 “현재는 매년 벡스코에서 SEK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PC통신협회 활동이 알려지면서 국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회사로부터 홍보의뢰를 받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이윤보단 공익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자금문제 등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부산시내 큰 전산학원을 회원사로 영입해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당시 부산지검 지적소유권 담당검사와 함께 불법 S/W 단속을 병행했다.

당시 컴퓨터 한 대 값은 350만~400만원에 달했다. BBS 32회선을 운영하려면 32대의 PC가 필요했다. 사비를 들여 PC를 구입하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다.

이러던 차에 KT 한국통신에서 ISDN(종합정보통신망)을 지원해 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ISDN은 개통과 동시에 회선에 인터넷이 연결된다. 송 대표는 전국 시도의 기업체나 가정 등에 20~30대씩 무료로 나눠줬다. 그 덕에 KT는 가입자들의 전화이용료 등으로 3년간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부산 동래우체국에도 인터넷이 되게 했다.

송 대표는 부산시내 40개 전산학원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MS-DOS'를 무료로 지원했다. 또 가야컴퓨터 상사매장과 초량 동사무소 등에서 PC통신 무료교육도 진행했다. 그는 국내 정보통신산업 발달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방송사 설립으로 제2의 인생 시작

20년간 유지됐던 부산PC통신협회는 2013년 문을 닫았다. 송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자연스런 세대교체’라고 답했다.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로 모바일 등 초고속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PC통신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PC통신의 보안성만큼은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IP주소로 하는 인터넷망은 해킹이 쉽지만, PC통신은 다이렉트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안성이 뛰어나다. 일례로 현대자동차 엔진부의 경우 15년 전 송 대표가 설치한 PC통신을 여전히 사용 중이라고 한다.

송 대표는 눈부신 IT산업이 가져온 폐해에 대한 안타까움도 나타냈다. 그는 “악성댓글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며 “특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올라오는 댓글을 보고 제 손가락 열 마디를 모두 자르고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정보통신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아래 한글 검정제도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악성댓글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라며 씁쓸해하는 모습을 였다.

▲IBN한국방송 기념식서 사업계획 발표

송 대표는 이렇듯 비정상적인 인터넷 문화와 사이비 거짓뉴스 등에 대항하기 위해 2014년 1월 IBN한국방송을 설립했다. 부산시청, 강원도청 등 지역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는 관공서 뉴스만을 취급한다.

지난 18일에는 부산 해운대 문화복합센터에서 IBN한국방송 4주년 기념식 및 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송 대표는 2017년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행사에 참여한 안경률 부경대 석좌교수는 축사를 통해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고, 이치수 인터넷신문협회장도 'IBN한국방송과 같은 사업모델을 가진 인터넷언론은 유일하다'며 밝은 미래를 예견했다.

송 대표는 인넷과 모바일 외에도 일반인들이 TV채널에서도 IBN한국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또 여력이 된다면 취재기자 인원을 늘리고, 방송차량을 구입해 현장에서 촬영 후 편집해 바로 송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최종 목표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흔의 나이임에도 휴일까지 반납하고, 뉴스 편집도 직접 챙긴다. 물론 틈틈이 체력관리도 신경 쓰고 있다.

송 대표는 “올해 나이가 70이 넘었지만 마음 같아선 50대처럼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며 “부산경남을 넘어 전국의 유저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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