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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3일은 연평도 포격도발이 일어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은 3대 김정은으로 세습을 본격화한 북한이 천안함 폭침 도발이 있은 지 불과 8개월여 만인 2010년 11월 23일 오후 서해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해안포와 곡사포로 추정되는 포탄 100여 발을 발사한 사건이다.

포격 도발로 인해 해병대원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은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심각한 도발행위였다.

이 도발 사건은 사상자를 발생케 했고, 연평도 주민들이 생업의 본거지인 섬을 떠나 인천으로 피난을 가는 등 대한민국에 혼란과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도발이 우리에게 ‘실(失)‘만 남긴 것은 아니다. 전화위복으로 우리의 안보현실을 되돌아보게 했고 우방국의 중요성, 나라사랑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우리 군은 3년 전 연평도 포격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과 서북도서에서 군사력 증강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사거리 20여 km에 정밀 타격 능력이 핵심인 스파이크 미사일과 단 한 발만으로도 축구장 크기의 면적을 거뜬히 초토화 시킬 수 있는 다연장 로켓과, 10km밖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도 일찌감치 대비 태세를 갖췄다. 3년 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유일한 대응수단이었던 K9 자주포는 3배 가까이 늘었고, 2011년에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돼 병력 천 200여 명이 추가 배치되었다.

또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이점은 젊은이들의 애국심과 안보의식이 고취된 점이다. 2010년 12월초 병무청은 포격도발로 인해 해병대원 전사자가 발생하여 당초 해병대를 지원한 사람 중에 취소자가 많을 것으로 우려했지만 취소자는 거의 없었으며, 해병대를 지원 입대하려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증가하였고, 특히 해병대 중에서도 최정예 요원으로 꼽히는 수색대 지원자는 모집정원을 크게 넘기기도 하였다.

아울러 국민들 또한 연평도 포격도발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처해 있는 불안한 안보현실을 명확히 직시하게 됐다. 2013년 6월, 안전행정부가 실시한 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국지적 무력도발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인식(성인 60.8%, 청소년 67.8%)하고 있으며, 안보의식 수준도 2010년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이 안보불감증에 빠져 있던 우리 사회에 크나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도발로 얻은 것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를 계기로 군은 더욱 강화된 방어체계를 구축하였고, 국민들은 보다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재무장하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냥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공산주의 침략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용사, 서해 바다를 지키다 전사한 천안함 용사와 연평도 용사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더해주었다.

이 분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잊지 말고 기억해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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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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