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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한국현대시 100년 날개를 달다! - 山史현대시100년관(백석대. 백석문화대. 백석예술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려.....
  • 기사등록 2015-05-04 21: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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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제신문/ 이경자 기자]

‘山史현대시100년관’(백석대학교 관장 문현미)은 ‘광복 70년, 현대시 100년 날개를 달다’전을 푸르른 5월의 첫 날,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시단의 원로시인들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시인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동요를 비롯해 시인 정지용의 <향수>가 백석합창단과 백석예술대 오케스트라 연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국현대시의 역사를 마주하며 조국과 고향, 부모님을 떠올리는 시적 감동에 젖었다.

 


시인 신경림 선생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흙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바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을 낭송해 고향집을 발견하는 끙끙거림을 앓게했다.

 

시인 문정희 한국문인협회장은 자작시 ‘흙’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거슨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 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을 그 특유의 깊은 감성이 묻어나는 말 맛으로 나송해 묵언을 낳았다.

 

시인 신달자 선생은 ‘끈’ 내가 건너 온 강이 손등 위에 다 모여 있다/ 무겁다는 말도 없이 손은 잘 받아 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꽤나 수척해 있다/ 툭툭 튀어 나온 강줄기가 순조롭지 않았는지/ 억세게 고단하게 보인다/ 허겁지겁 건너 오느라 강의 성도 이름도 몰라/ 우두커니 쳐다 보기만 하는데/ 뭐 이름을 알아 무엇하냐며 손사래를 치는 것인지/ 퍼런 심줄 줄기가 거칠게 겉늙어 보인다/ 그 강의 이름을 그냥 끈이라 하자/ 날 놓치 못하고 기어이 내 손등까지 따라 와/ 소리없이 내가 건넌 세월의 줄을 홀쳐 매고 있으니/ 자잘한 잔물결이 손등 전체에 퍼져/ 내가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세월의 주름은 더 깊게/ 내 손을 부여잡고 있다/ 그 세월 손아귀 힘이 장난 아니어서 아예/ 잠 못드는 밤 팔 베개를 하고 그 강줄기들과 함께 흐르려한다> 을 낭송해 삭풍에 시린 마음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시낭송대회 수상자 김명수군(유치부)과 여자친구(?)는 ‘아빠의 봄날’ 동시를 낭송해 참석한 어르신들의 입가에 미소를 자아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만해(卍海) 한용운 연구의 권위자인 문학평론가 山史 김재홍(한국시마을예술촌장) 경희대 명예교수께서 평생을 바쳐 수집. 보관하고 있던 한국시단(韓國詩壇)의 보배롭고 진귀한 자료들로 지난 2013년 고향 천안 백석대학교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가 기획하고 주최해 큰 의미를 더하고 있다.

 

山史 김재홍 교수는 생명. 사랑. 평등의 바탕에 ‘하늘에는 별. 땅엔 꽃. 사람에게는 시(詩)’를 캐치프레이저로 스승 초대문화부장관 시인 정한모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자 인생전체가 시가 되어 외로운 길을 걸어 지금 여기까지 왔다.

 


이번 백석대학의 산사현대시100년관 ‘광복 70년, 현대시 100년 날개를 달다’ 전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그 혹한 속에서 꽃피워낸 한국 서정시의 발자취를 한 눈에 발견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씌어진 화합된 평화통일의 그날에 대한 시인들의 긴 기다림이 한국현대시의 지평을 넓히며 자리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또한 계간 ‘시와 시학’ 창간 25주년(100호)을 목전에 두고 김교수의 고향 충남 천안시 목천 ‘한국시마을예술촌’에서 ‘현대시 100년 한국 서정시 100인 시화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날 ‘山史현대시100년관’ 문현미 관장은 “예술사의 혼이요 정신사의 꽃인 ‘시(詩)’ 그 아름다운 이름을 만나보시기 바란다”라며 운을 뗀 뒤 “진달래 연분홍 꽃빛이 눈부신 계절, 매화향기 그윽한 봄 뜰을 거닐 듯, 우리 함께 시의 마당을 거닐자”고 말했다.

이어 김소월의 시(詩) ‘진달래 꽃’과 어우러진 만개한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는 시심의 여운이 켜켜이 묻어나는 전시장을 열정적으로 안내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1일(월)까지 시심 가득한 발길을 기다린다.


이밖에도 계간 ‘시와 시학’은 지난해 2014년 12월 26일(금) 오후 5시 ‘문학의 집’(서울 산림문학관)에서 제18회 시와 시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이성천(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시와 시학 상 시상식은 살을 파고드는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 없이 잔잔하고 부드러운 ‘만돌린’ 연주(조영숙 외)로 팡파레를 울려 참석자들의 마음을 힐링케 했다.

2014년 <제18회 시와 시학상> 대상에는 고은 시인, 작품상에는 유자효(시집 ‘심장과 뼈’)시인, 평론상에는 유성호(평론집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평론가, 펠로우시인상에는 박완호(시집 ‘너무 많은 당신’)시인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전 서울 중앙지검 검사장, 대한 공증인협회장 ASIA 회장, 독일 Freiburg 대학 한국총동문회장, 국제 Rotary 3650 지구 총재보좌역, IGM 700인 CEO Club 명예회장 김진환(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시와 시학 운영위원장’은 격려사를 통해 “뜻 깊은 시와시학상 시상식을 갖게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수상하시는 분들도 메가톤급이고 또 참석한 분들도 김남조 선생님을 비롯한 문단의 중요한 분들이 참석하셔서 메가톤급이 된 것 같습니다. 매우 중요한 획을 긋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힘들다지만 훌륭한 시인님들이 계셔서 세상이 밝고 따뜻한 세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김진환 변호사는 세상을 달관한 시(詩)의 귀재(鬼才) 애월당 김시습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인 인본주의(人本主義)에 입각, ‘지나치면 오히려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과유불급(過猶不及)>’을 좌우명으로, 중용(中庸)의 미덕(美德)을 잣대 삼아 서정적 감성으로 사람을 품어 화합하는 실천적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우리사회의 근간이되는 빛나는 금강석(金剛石)이다.

 

한국문단의 원로 김남조 시인은 축사를 통해 “오늘은 말 잘 하면 안된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인이 말을 잘 하고 글을 다른 사람보다 잘 쓰고 이것이 될 일인가(?)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요새 겨울 경치에 저는 자주 압도 당합니다. 제가 특별히 겨울을 좋아한다거나 하면은 그것도 일종의 허세같이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큰 숲과 광야, 그 나무들이 전부 어설펐고 자기잎들을 땅에 떨구어서 뿌리의 힘으로 살고자하고 그 숲이나, 뭐 어디나 어디나 할 것 없이 그 많은 본래들은 흙의 체온으로 좀 살아보자고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더 커지고 높아졌습니다. 이런 풍경속에서 저는 제 나이가 아주 많아졌죠. 이번 크리마스 내내 아르테라고 하는 78번 채널의 음악을 들으면서 문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한계를 벗어나는 때도 있지만은 문학은 항상 질문하는 일이고 대답하는 일입니다. 평생을 질문하고 평생을 대답했지만은 별 것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과소 평가하지 말고 내 인생이 허무했다고 하지 마시고 풍요로웠다고 그리고 일생 사는 시간 어느 한 시간도 좀 짝이 깨져서 온 시간이 없었어요. 반듯하게 날마다 시간마다 세월은 항상 정직하게 그리고 바른 몸으로 왔었습니다.

 

그 시간을 누렸다는 것 그리고 오늘 우리가 동시대 같은 별에서 같은 나라에서 같은 문학을 하면서 왔고, 또 오늘 만나 이 자리 같이 있다 이런 것이 참으로 눈물겹도록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재삼 시인은 옛날에 ‘가장 슬픈것이 가장 아름다운 글씨’라는 시론에 의해서 자기가 시를 쓴다고 기록에도 남긴적이 있습니다. 박재삼 시인을 정숙희 선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 번 가 본적이 있는데 발끝을 잘랐더군요. 그래서 담요를 할머니처럼 쓰고 앉았는데 그 가련함이 참으로 박재삼 시인을 못잊게 합니다.

 

가장 아픈것이 가장 아름다운것이고 가장 가난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제가 얘기를 길게하면 안됩니다. 차례로 오늘 축하할 분들을 얘기하자면은 시인이 아니면서 시의 은일로 25년을 살아왔고 대학때부터 시를 공부했고, 또 시를 가르쳤고 이런분에 대한 감사를 우리가 잊을 수 없습니다. 고은선생이 나오신 것도 첫째는 그 사람에 대해서 그가 시에 대해서 헌신한 것에 대해서 시인으로서 감사하는 뜻으로 나온 점이 많을 것입니다.

 

고은선생이 이 시 상이 젊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장황한 그리고 혹해한 그 시 세계를 제가 <백두산>하면 하편을 못쓰는데 몇 권으로 <백두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도 아직 그 기운이 남는 분이 지금은 그 산 속에 산신령으로 들어간 것 갔고, 요새 고은선생이 쓰는 시는 귀를 기울여도 아슴하게 잘 안 들립니다.

 

조용하게 그 말은 깊어지고 멀어지고 어떤 의미에서 영원해지는지 모릅니다. 무슨 상을 준다해서 상이 되어서 가기보다 김재홍선생에 대한 시인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러 나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그래요(?) 박수와 웃음!!..... 저는 고은 선생을 50년 전에 만났습니다. 50년 동안에 그분의 변모도 보았고 그 분의 무한한 재능도 압도적인 그 재능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갈등도 읽었고 삶이 가지고 있는 많은 아픔도 저는 짐작 했습니다.

 

지난 88올림픽때 ‘남북이 같이 안 볼 바에는 텔레비전을 끄라’고 했을 때 저는 조금 지나치다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만 그런 오기도 부렸다가 또 어디가서는 ‘풀잎에 울었다’가 ‘올라갈 때 못보던 꽃이 내려올때는 보인다’는 시력을 가졌습니다. 이제 그 분의 청력이나 시력이나 이런 것은 또다른 하나의 극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큰 시인이죠.”라며 우정어린 축하 메시지를 날렸다.

   

이어 “유자효 선생은 이 시대 정말 사랑스런 남자입니다. 사회 잘 보고, 시 잘 쓰고, 노래 잘하고, 어디든 그가 있으면 즐거운 자리가 되는..... 그리고 유자효 선생이 지난번에 냈던 <거룩한 뼈>라는 시는 저를 특히 감동시켰고, 제가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산병원에 19일간 있는 동안에도 많은 자문을 받았습니다. 심장병 동창생입니다.”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했다.

 

더불어 김남조 선생은 “한사람을 덧붙이면 유성호 교수입니다. 저는 유성호 교수가 요새 읽는 책마다 평론을 썼어요. 이렇게 많이 써도 되는가(?) 쓸 수 있는가(?) 뭐라고 썼는가(?) 제가 봅니다. 어떤 시인은 내가 평가하고 있던 시인은 제가 평가한 만큼 특이한 관점으로 봤는데 어떤 시인은 조금 미안하지만은 아! 이런 경우도 이 사람이 쓰는가(?) 이런 어떤 회의를 가지고 이렇게 보면은 이렇게 놀라운 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름다운 점이 있듯이 어떤 시인도 시 속에 장점이 있습니다. 칭찬해 줄만한 점이 있습니다. 이분은 그것을 찾았어요. 그래서 그를 격려해 주고 ..... 유성호 교수 어디있습니까? 정말 당대에 이런 평론가 하나가 귀합니다. 정말 한 줌씩 좁쌀을 나눠주기를 백명도하고, 천명도하고, 만명도하고, 젊은분인데 이렇게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이렇게 남의 좋은점을 찾는 시력을 가지고 여기에 좋은 평론가가 나와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 자리에는 아주 귀한 이들로 가득차 있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은 또는 중심점은 이겁니다. ‘우리의 삶을 스스로 작게 보지말고 크게보자’ 저는 88년을 살았는데 아주 그것은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참 만족할 만한 것이었고, 황송하게 과분한 것이었고, 그리고 내가 잘살았다 못살았다 보다도 정말 출생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잘한 중에 가장 좋은게 뭐였나(?) 문득 한가지만 대답하라면 만남입니다. 만났다는 것 만나서 생각하고 얘기하고 손잡고 함께 늙어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오늘 제가 만나뵈서 참으로 행복합니다.”라며 88세(米壽)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문학소녀의 홍조 띤 밝고 환한 얼굴로 후배문우들을 격려하며 자리를 빛냈다.

 

아울러 계간 ‘시와 시학’ 창간인 겸 임시주간 문학평론가 김재홍(한국시마을예술촌)교수는 심사평을 통해 “반갑습니다. 여러모로 시간을 내서 격려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이런 생각을 잠깐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문학사에 대한 시혼(詩魂)에 대한 하나의 경의의 표현이고 또 감사의 그런 표현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연세가 가장 높은 어른이시고 문학성이 가장 높은 그런 분이신데 번번이 여러차례 나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들어주시는 것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와 존경 그리고 사모의 마음을 새삼 선생님께 올립니다.

 

그리고 여기 한 분 한 분 다 말씀을 드려야 하지만, 고은선생님! 사실은 이런 ‘시와시학사’ 감히 이따위 상을 받을 어른이 아니죠.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신데 감히 제가 서운했습니다. 왜 서운 했느냐. 그래도지난 58년도 등단 하셔가지고 첫 시집 이래 가장 많은 작품량도 그렇고, 또 작품의 질, 그 높이와 깊이, 넓이가 우리 현대시문학사상, 현대시문학사상 고 선생님을 능가할 분이 과연 누군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해, 소월, 지용 다 한 두 권 시집으로 끝나신 분들입니다.

 

그기에 비해서 선생님은 평생을 오로지 글쓰기 특히 시 쓰기로 시집만 해도 우리가 알다시피 <백두산 7권>, 또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 ‘만인보’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 천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수 십권 등등 모두 합해서 한 150권 쯤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엄청난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한 권 한 권에 질, 그리고 그 깊이, 이런 것들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야말로 한국시문학의 한 정상이고, 한 정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저는 합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이 들꽃같은, 들풀같은 ‘시와시학’이라고 하는 시지(詩誌)에서 어떻게 선생님께 이런 상을 드린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 끝에, 이게 어느새 제가 43세에 시작했는데 뭘 갖춰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딱 한가지죠. 제 은사(정한모 초대 문화부장관 ) 선생님도 시만 공부하다가 가신분이고, 그렇게 해서 ‘시와시학’이라는 조그만 잡지를 시작해 어느새 올해가 25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또 제 나이도 43에 시작해서 68세가 되고 내일 모레면 69세 되고 또 며칠 지나면, 또 어느새 저도 어른들 앞에서 나이를 말씀 드리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곧 70세가 되고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지난 25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살아왔을 터인데, 그래도 그때 시와 또 시학, 시에 관한 비평이며, 연구며, 부분적인 그런 작품 일체를 시학(詩學)이라 그럴 때, 그것을 그래도 씨를 하나 뿌린게, 지금 시지(詩誌)가 나오는것만 해도 100여종이 넘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확실히 나라가 되는 이런 작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 보면 헛살진 않았구나(!) 그래도 열심히들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1966년에 대학에 입학해 가지고, 어느새 내일 모레면 20015년이니까, 저도 적잖이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오로지 공부만 해 온 것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정희성 시인님하고 대학원에 같이 다녔습니다. 저는 정한모 선생님 방에, 정희성 선배는 정병욱 선생님 방에, 정병욱 선생님은 고전시를 공부하신 분이고, 정한모선생님은 현대시를 공부하신 분입니다.

 

똑같이 정선배랑 저는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돌이켜보면 짜짱면 한그릇으로 나눠 먹었던 일이 여러차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저도 공부하는 쪽에서, 50년 세월을 어느새 딛고 우리 정희성 시인도 또 그 이상을 노력하신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항상 그런 결곡한 우정을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지속하면서, 항상 격려하고 손을 잡아주시는 것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서 인사말씀을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다 인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43세에 시작해서 이제 69세 되니까 25년이 되었어요. 잡지는 장사며, 사업이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제대로 편하게 쉬어 본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책을 만들어서 ‘이것 좀 사시오. 이 시를 좀 사 주시오’라며 거리로 나오면서 인생을 다시 공부하고 문학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거리에서가 아니라 26세에 대학선생이 되어서 지금 69세 되는 지금까지 대학 선생만 했으면 편하게 살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와 ‘시를 사 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 벌써 40년하고도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 동안 한 예로 여기 계신 김남조 선생님, 고은 선생님 이 두 어른이 끊임없이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았고 여기 계신 정희성 선배, 김광규선생님께서 항상 격려해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새삼 이 자리를 빌어 존경과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시인들, 시론가들이, 지금까지도 애써셨지만 앞으로도 좀 더 노력하셔 가지고 분투하셔서 좋은 작업을 우리 문학사업, 시문학사에, 우리 외롭고 쓸쓸하게 살다간, 수 많은 이 땅의 우리 민중들, 우리들에 삶에 다시한번 꽃피우고 열매 맺어서, 우리들 후손들을 좀 더 사람답게 사는 그 어떤 길을 일러 주십사 하는 그런 부탁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새삼 존경하는 고은선생님께서 지금 이런 시시한 ‘시와 시학상’ 이런 것, 받을 처지도 아니고 또 저도 부탁드릴 처지도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 우리 시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존경심이 있는 분이라 생각해서 감히 전했고, 또한 흔쾌히 받으시겠다 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시의 도반이요, 정신적인 친구로 변치않고 여기까지 함께 온 유자효 시인은 대학 후배인데 기자생활 하느라고 바빠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대승하시기 바란다.”라며 “평론가 유성호 시인, 평론가 이성원 선생, 경희대 제 조교였던 시인 박완호 선생께도 격려와 성원 변치않는 사랑”을 당부하면서 우리 현대문학사, 현대시문학의 앞날에 당당한 횃불을 당겼다.

 

축하 시낭송에는 ‘아이국악 경남지부장’으로 경남 삼천포 비토섬 출신의 창원 ‘비둘기 동산 유치원, 어린이집 원장’ 김미숙 선생(한국문인협회, 경남문협, 경남여류문학회원)이 고은 시인의 시를 낭송해 감동을 자아냈다.

 

상패는 한국문단의 원로 김남조 시인께서 무대에 올라 고은 시인에게 수여해 참석한 문우들을 비롯해 관계자들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적인 한 순간을 연출했다.

 

시집 ‘아버지의 만물상 트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부산출신 문현미 시인은 유자효 시인 시를 낭송해 그 특유의 가냘프면서도 침착한 뚝심과 강인한 의지를 자아내는 단열한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으며 몰입케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한 김후란 시인이 유자효 시인에게 상패 수여를 했다.

 

평론가상 유성호 수상자에게는 김광규 시인이 상패를 수여했으며, 최연소 김지윤 시인이 박완호 시인의 시를 또랑또랑 맑고 청아하게 낭송해 참석한 문단의 어른들께 흐뭇함을 선사했다.

 

김광규 시인은 축사를 통해 고은 시인과의 특별한 독일에서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고은 시인께 그날의 추억을 되돌리듯이 ‘아리랑’ 노래를 청해 무대에 오른 고은 시인이 한국인의 한(恨) 서린 민족적 정서와 음률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리랑’을 불러 장내에 뜨끈뜨끈한 파문을 일으켰다.

 

자유롭고 평화로움 가득한 파리지엥느의 멋드러진 샹송으로 청중을 감미롭게 하는 유자효 시인은 KBS 파리특파원 시절을 추억하듯 은발의 연륜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마력적 샹송을 불러 최상승의 인기를 누렸다. 

 

시집 ‘신처용가’의 지은이 대구의 정숙 시인은 언제나 늘 그 꾸밈없이 당당하고 활짝 밝은 모습처럼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렛토 중 ‘축배의 노래’를 원로시인 김남조 선생의 턱 앞에서 열정적으로 불러 갑자기 좌중을 생명력 넘치는 활기로 리더, 참석자들을 일대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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