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일)> 조실(祖室) 요산(樂山) 지안(志安)스님 계신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15교구본사 불보사찰(佛寶宗刹) 통도사(通度寺) <반야암(般若庵)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어느날 지리산(智異山)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다 <마고전설(麻姑傳說)>에 대해 알게 됐다.
마고(麻姑)는 지리산(智異山) 사자평 그 넓은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목나무 군락의 헐벗음에 대한 얘기였다. <마고(麻姑)와 반야(般若)>는 함께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반야(般若)가 떠났다. 마고(麻姑)는 반야(般若)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손톱이 닳도록 주목나무의 껍질을 벗겨 그 껍질을 이용해 베틀로 옷을 짜고 있다는 슬픈 얘기였다.
그래서 지리산(智異山) 사자평 그 넓은 곳에는 껍질 벗은 주목나무가 천년의 신비로움을 가직한 채 산사람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어디를 가나 <문화융성(文化隆盛)>이 대세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해 <오페라>나 <뮤지컬>로 만든다면 <경남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세계화(世界化)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짙은 가을 정취가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루는 11월 15일(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通度寺) 반야암(般若庵.주지 요산(樂山) 지안(志安)스님)에 김해바라밀선원 도반(道伴)들이 <야외힐링! 일요가족법회>를 위해 오전 10시30분 다 모였다. 모두 함께 법당(法堂)으로 가 인해(仁海)스님께서 이끄는대로 부처님전에 <“일심(一心)으로 합장(合掌) 드리오니 관세음보살님(觀世音菩薩)의 한량없는 자비심(慈悲心)으로 .....>”라며 예불(禮佛)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두 손을 합장(合掌)한 채 늘 하던대로 <“부처님! 김해바라밀선원 불사(佛事)가 원만히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서원(誓願)을 염송(念頌)했다.
예불(禮佛)이 끝나고 인해(仁海)스님을 뒤따라 늘 걷던 법당(法堂) 뒤편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수림(樹林) 힐링코스가 아닌, 법당(法堂) 앞 계곡의 출렁다리를 건넜다. 계곡의 출렁다리는 물소리가 쏴아~한 음률로 흐르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밧줄로 이어진 다리는 출렁출렁 리드미컬하게 춤을 춘다. 다리를 건너는 도반들의 얼굴에는 활달한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이내 두려움으로 손의 힘점을 가하는 그러면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함박웃음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묘(妙)한 이중의 매력을 즐긴다.
반야암(般若庵)의 무르익은 가을은 온 산을 형언(形言)할 수 없는 색채(色彩)의 마술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부드러움 보다 깊고 풍부한 생명(生命)의 기(氣)가 혈맥(血脈)을 타고 흐르는 강렬한 빛깔이다. 수담 인해(仁海)스님을 뒤따르는 김해바라밀선원 도반(道伴)들의 행복감이 먼 발치에서도 물씬 풍겨난다. 맑고 곱게 물든 활엽수 빼곡한 힐링 산책길에 들어서니 대자연의 질서 정연한 살아 숨쉬는 나무 내음이 주는 향그런 감동(感動)과 낙엽에 감싸인 생명(生命)의 땅 기운(氣運)들이 저잣거리의 온갖 더러움에 찌든 몸을 정화(淨化) 시킨다.
또한 사람에 대한 배려, 멈춤, 움직임........ 말없는 겸손(謙遜)으로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을 체화(體化)하며 서 있는 나무와 움직이는 도반(道伴)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 선 인해(仁海)스님께서 멀리서 손짓으로 따라 오라지만 쳐다보면서 쫓아가지 못하는 마음에 발길을 멈춰, 전혀 다른 성질의 <사람>과 <자연>이 저리도 닮아 절묘한 하모니를 이룰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일 전 비에 젖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쇠파이프 난간에 몸을 한바퀴 휘둘리며 세게 부딪쳤다.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늑골이 몇 개 나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굳게 믿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비가 올듯말듯 몇 방울 떨어져서일까(?) 습기가 기분좋게 촉촉하다. 잠깐 어린시절로 돌아가 나무냄새와 떨궈진 알록달록한 나뭇잎을 손바닥 한가득 쥐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주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안했다.
오랜 세월 골을 크고 깊게 내고 있는 외피가 또렷한 꺼칠꺼칠한 소나무를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보았다. 거친 느낌이 주는 단단하고 뿌리 깊은 연륜(年輪)을 단박에 느꼈다. 이 나무는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이곳에 서서 그 수없는 날들을 견뎌냈을까(?) “그래도 나무야! 너는 참 좋겠구나. 매일매일 이 청정도량(淸淨道場)에서 부처님 법문(法門)을 들으면서, 영축산(靈鷲山) 정상에 우뚝 솟은 신령스런 바위 기운(氣運)이 항우장상(項羽將相)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로 깊은 계곡 골짜기마다 흐르는 물소리와 벗하고, 여여(如如)한 요산(樂山) 지월당(指月堂) 밝은 달빛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이곳이 바로 극락(極樂)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난 여름내내 아침마다 김해도서관(관장 김덕화) 마당에 있는 소나무 솔잎을 몇 잎 따서 꼭!꼭! 씹었다. 솔잎의 떫고 푸른향이 몸을 깨우며 머리를 맑혔다. 굴참나무가 있어 도토리도 주웠다. 도토리묵 생각이 나서 깨물어 봤다. 떫었다. 하지만 그 떫은 맛이 싫지는 않았다. 주목나무 쬐끄만 붉은 열매는 또한 어떻게나 예쁜지.....살며시 입에 넣어 혀 끝으로 맛을 감지했다. 찍찍한 코가 미끌미끌 했지만 달콤했다. 높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은 시시각각 새하얗게 뭉게구름을 피웠다가 또 솜털구름을 피웠다가, 비늘구름을 피웠다가,....잠시 잠깐도 머무름없이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_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 대한 동경(憧憬)으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를 입속으로 여러번 되뇌었다.
또 한편에서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산티아고’의 여정(旅程)에서 마주하는 사막에 쏟아지는 별들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어머님 계신 먼 북간도가 아닌 서울 종로구 청운중학교 지나 오른 언덕배기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 야외무대가 선연하게 떠오른다.
어느 해 가을 이맘때 쯤 ‘별헤는 밤’을 낭송(朗誦)했었던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또한 부조리극(不條理劇)의 대명사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결국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두 주인공에게서 찾은 것은 ‘쓸쓸한 현대인의 꿈의 부재’, 즉 아무것도 오지 않음, 아무것도 없음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던지는 의미없는 대화(對話)는 현대인(現代人)의 고독(孤獨)과 소외된 삶을 상징(象徵)하는 페이소스로, <소통(疏通)>하지 않으면 <희망(希望)>을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傳)하고 있다.
불확실하고 메마른 시대 ‘내 삶의 고도는 무엇일까(?)’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계속에서 우리는 더 더욱 고독(孤獨)해지니까요(?)”라고 말했던 ‘프란츠 카프카’를 수십 년 만에 떠올리기도 했다. 또한 ‘파울로 코엘뇨’의 <연금술사>를 다시금 곱씹어 봤다.
주인공 ‘산티아고’가 시작한 <긴 여행(旅行)>은 그 자체 <삶의 소중한 보물(寶物)>을 담고 있다. 떠돌아다니기 위해 양치기가 된 청년(靑年) ‘산티아고’에게 인생(人生)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은 <‘꿈의 실현’>, 즉 <위대한 업(業)>, <자아(自我)의 신화(神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실현(實現)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늙은 왕(王)의 말(言)과 그가 건네준 두 개의 보석(寶石)을 지표(識標)로 삼아 기약없는 여정(旅程)에 용기(勇氣)있게 나섰다.
그 여정(旅程)에서 산티아고는 <‘만물에 깃들인 영혼의 언어(言語)들’>을 하나하나 배운다. 그리고 운명(運命)같은 <‘연금술사(鍊金術師)’와의 만남>으로 절대적인 영적(靈的) 세계(世界)를 물질(物質)과 맞닿게 하는 연금술(鍊金術)이 <‘만물(萬物)과 소통하는 우주(宇宙)의 언어(言語)’>라는 것을 깨닫는다.
연금술(鍊金術)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진정으로 갈구할 때,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寶物)을 찾아 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위대한 업(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자아(自我)의 신화(神話)>를 살아내는 세상(世上) 모든 사람 앞에 조용히 열려, 유일하게 <무의식(無意識)에 도달하는 만물(萬物)의 정기(精氣)>다. <내면의 심연(深淵)>속에 고요히 잠겨 들어가 만나게 되는 <삶의 연금술(鍊金術), 영혼(靈魂)의 연금술(鍊金術)>은 <머리가 아닌 깊은 마음>에 전하는 <상징(象徵)의 언어(言語)>이다.
산티아고는 <운명(運命)의 길>을 다시 찾게 해준 <스승 ‘람’>을 만나면서부터 <연금술(鍊金術)>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혹독한 정신감응(精神感應) 훈련(訓練)을 마치고, 연금술(鍊金術)의 길에 들어서서 <연금술(鍊金術)의 비밀>을 얻었으며, 자신의 삶속에서 <철학자(哲學者)의 돌>을 발견했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부터 <과거>나 <미래>에 연연해 하지 않고 <만물(萬物)의 정기(精氣)>와 호흡한다.> 결국 <자아(自我)의 신화(神話)>를 찾아가는 고된 여정(旅程)을 통해 필요한 모든 것, <삶>의 비밀스럽고 심오한 진리(眞理)를 깨달아 그가 <꿈꾸던 삶>을 얻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만나기 위해 53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구도여행(求道旅行)>과 한국불교(韓國佛敎)의 선맥(禪脈)을 잇기 위해 <경허선사(鏡虛禪師)>가 <길없는 길>을 무섭게 헤쳐나아간 정진(精進), 티벳 불교의 대스승 세계평화(世界平和)의 상징(象徵) <용서>의 ‘달라이 라마’, 무저항(無抵抗)의 ‘마하트마 간디’, <맑고향기롭게>의 ‘법정스님’, ‘파울로 코엘뇨’의 <연금술사(鍊金術師)의 ‘산티아고’> 등은 동서양(東西洋)을 초월(超越)해 각자의 화두(話頭)로 <자아(自我)를 실현(實現)>한 픽션과 논픽션의 인물(人物)들이다.
이들에게서 또는 자연(自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주만물(宇宙萬物), 삼라만상(森羅萬象), 우리 자신(自身)이 자연(自然)의 일부이며, 결국 자연(自然)으로 돌아가 자연(自然)의 흐름에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무욕(無慾)의 이 평범한 진리(眞理)를 우리 중생(衆生)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안타깝게도 생활속에서 떠나있을 때가 많다. 부처님께서는 불교(佛敎)의 <팔정도(八正道)>에서 <계.정.혜(械.定.慧)>를 <삼학(三學)의 완성(完成)>이라 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의지해 남을 위해 헌신(獻身)한다면 처처(處處)가 모두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을 제거한 <화장세계(化粧世界)>, 즉 <원융무애(圓融無碍)>라 했다. 중생(衆生)이 비록 세상의 온갖 더러운 곳에 뿌리를 두고 진흙속에 머물더라도 맑은 본성(本性)을 간직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면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맑고 향기로운 <화중군자(花中君子) 연꽃>을 피워 <세상(世上)을 정화(淨化)>하게 된다.
<깨달음의 삶>이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히는 <연꽃>처럼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이웃을 구제(救濟)하는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이기심(利己心)>을 없애고, <자비심(慈悲心)>을 키우며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처럼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상구보리(上求普利)/ 화와중생(下化衆生)>
<11월 26일(수)> 동안거 결제 <찬불가법회 및 조상천도재> 봉행
<12월 5일(토)> <관음재일> 법회 및 <우리말 보문품> 독송
<12월11일(금)> <초하루 법회 및 신중기도> 및 <초기경전> 법문
<12월16일(수)>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 포교원 김해바라밀선원에서는 해수관음보살의 아름다움이 눈부신 <남해 보리암>과 <사천 다솔사> 성지순례(聖地巡禮>를 아침 7시 40분에 출발해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