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명(文明)의 정신적(精神的) 주축(主軸)은 불교(佛敎)이다. 현재 전세계(全世界) 인류사회(人類社會)에는 이해(理解)가 상충된 국가가 <223개국>이다. 민족은 <8,890>여 개, 언어의 수는 <7,010>개가 구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서(情緖)와 지성(知性)이 제각기 다르다. 사회적(社會的) 여건과 역사적(歷史的) 배경(背景)이 상이(相異)해 혼돈과 갈등, 대립과 투쟁,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부단하게 반복하고 있다.
이와같은 우리의 오늘을 바르게 인식해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智慧)로 극복하고 포월(包越)해 나가야 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영국의 역사학자(歷史學者)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인류사회(人類社會)가 공영공존(共榮共存) 할 수 있는 길은 아시아의 대승불교(大乘佛敎) 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헤르만 헷세(1877~1962)는 “전 인류사회(人類社會)를 합일(合一)할 수 있는 사상(思想)은 불교(佛敎)뿐이라고 했다”
지금 세계(世界)는 새로운 이념(理念) 및 사상(思想)의 좌표(座標)를 요구(要求)하고 있다. 전인류(全人類)가 통일(統一)된 조화(調和)속에서 각 개인(個人)에게 자유(自由)와 행복(幸福)이 보장(保障)되는 이념체제(理念體制)와 과정(課程)이 실현(實現)되는 시대(時代)로 집약(集約)돼 가는 추세(趨勢)다.
한편 불교(佛敎)가 인간(人間) 자신(自身)을 찾고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强調)하고 있는 것은 현대인(現代人)이 자신(自身)에게 잠재(潛在)된 본성(本性)의 진면목(眞面目)을 실종(失踪)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나’라는 진면목(眞面目)을 역사적(歷史的) 행위(行爲)로 전개(展開)시켜 일상생활(日常生活)속에서 실천(實踐)해야 한다.
이에 우리 불자(佛者)들은 미증유(未曾有)한 인류(人類)의 선각자(先覺者)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듣고 따르고 깨닫는 길 이외에 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 말씀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鍛鍊)해 고요하고 겸손(謙遜)한 착한 사람이 돼야 한다.
(재)불교전도협회는 불교(佛敎)의 자비(慈悲)와 평화(平和)를 보편적(普遍的) 가치(價値)로, 내외불교(內外佛敎)와의 교류(交流)를 통(通)해 현대적(現代的) 관점(觀點)에서 정신(精神)과 사상(思想)의 이해(理解)를 촉진(促進)해 진흥(振興)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평화(世界平和) 사회(社會) 구현(具現)을 위해 불교사상(佛敎思想)이 21세기 인류지도이념(人類指導理念)의 지표(指標)로 책정(策定) 되도록 공헌(貢獻)하고 있다. 본(本) 재단(財團)은 지난 2004년 8월25일 법인(法人)으로 설립(設立), 허가(許可)됐다.
<법륜(法輪)>
법륜(法輪)은 다르마 챠크라(Dharma-chakra)라고 하는 산스크리트를 한문으로 옮긴 말이다. 수레바퀴가 쉬지 않고 굴러가듯이 미래(未來)를 향해 영원토록 퍼져나갈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법(佛法)을 상징하고 있다. 방사형의 여덟 개 바퀴살은 불교(佛敎)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實踐德目)인 여덟가지 올바른 길 팔정도(八正道), 즉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직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마음통일>을 상징하고 있다.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법륜(法輪)이 예배의 대상으로 불자들의 숭배(崇拜)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세계 불자들의 국제적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智慧)는 바다처럼 넓고 부처님의 마음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하다. 부처님께서는 형체(形體)가 없으면서 미묘(微妙)한 모습을 보이고, 온 몸과 마음으로 가르침(法)을 베푼다. 이 책은 2,500여 년 동안 나라와 민족(民族)을 초월(超越)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5,000여 권에 이르는 가르침(法)의 정수(精髓)다. 이 속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응축(凝縮)해 사람들이 현실세계(現實世界)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을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답해주고 있다.
<법구경(法句經)>에는 전장에 나아가서 수 천 명의 적(敵)과 싸워 이기기보다 <자기(自己)를 이기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전사(戰士)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自身)을 알지 못하고 현명(賢明)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백 년(百年)을 살더라도 위없는 진리(眞理)를 만나지 못한다면 진리(眞理)를 만난 사람의 단 하루의 삶만도 못하며, 죽음에 이른 나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한(怨恨)은 원한(怨恨)으로 멈추지 않는다. 오직 자비(慈悲)만이 원한(怨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불변(不變)의 진리(眞理)다. 모든 악(惡)을 멀리하고 모든 선(善)을 행(行)하며 자신(自身)의 마음을 맑게하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다.
1.인도(印度)편 <불타(佛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히말라야산 남쪽 기슭을 흐르는 로히니 강가, 석가족(釋迦族)의 수도(首都) 카필라 성(城)의 ‘슛도다나 고타마’ 왕과 석가족(釋迦族)의 일파인 데바다하 성(城)의 콜리야족 공주(公主)였던 ‘마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에게는 20여 년의 세월(歲月)이 지나도록 자식(子息)이 없었다.
어느날 밤 왕비(王妃)는 하얀 코끼리 한 마리가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孕胎)했다. 나라의 관습(慣習)에 따라 마야 왕비(王妃)는 출산(出産)을 위해 친정(親庭)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東山)’에서 잠시 쉬었다. 아쇼카 꽃들이 따사로운 봄볕에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그 꽃가지를 꺽으려 왕비(王妃)가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옆구리에서 왕자(王子)가 태어났다.
온 세상(世上)이 이를 경축(慶祝)했다. 이 날이 사월 초파일(음력 4월8일) ‘부처님 오신날’ 이다. 왕(王)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바라던 일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왕자(王子)의 이름을 싯달타(깨달은자)라 지었다. 기쁨도 잠시 마야 왕비(王妃)가 세상(世上)을 떠났다. 왕자(王子)는 왕비(王妃)의 여동생 ‘마하 프라자파티’의 품에서 자랐다.
이때 산속에서 수행(修行)하고 있던 선인(仙人) ‘아시타’는 ‘카필라 성(城)’을 감싸고 있는 길상(吉祥)의 징조를 보았다. ‘아시타’ 선인(仙人)은 “왕자(王子)가 자라서 궁(宮)에 계속 머물면 세계(世界)를 통일(統一)하는 위대한 왕(王)이 될 것이다. 그러나 출가(出家)해 도(道)를 닦으면 세상(世上)을 구(求)하는 부처(佛陀)가 될 것이다.”라고 슛도다나 왕에게 말했다. 왕자(王子)는 이미 일곱 살 때부터 문무(文武)의 도(道)를 배웠다.
왕자(王子)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부왕(父王)은 옛날 ‘아시타’ 선인(仙人)의 예언(豫言)을 떠 올리며 걱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왕자(王子)가 19세 때 왕자(王子)의 외삼촌 ‘데바다하 성(城)’의 왕(王) ‘수프라붓다’의 딸 ‘야쇼다라’와 결혼(結婚)시켰다. 이 후 10년 간 왕자(王子)는 봄과 가을과 우계(雨季)의 궁전(宮殿)에서 춤, 노래, 악기(樂器)소리에 젖어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화려한 궁전(宮殿)의 부귀영화(富貴榮華)도, 건강한 이 육체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이 젊음도, 대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람은 결국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生.老.病.死) 젊음도 건강도 산다는 것도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인간(人間)이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그릇된 것>과 <바른 것> 이 두 가지를 구(求)하며 살아간다. <그릇된 것을 구(求)한다>는 말은 스스로 늙음과 병과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기를 구(求)하는 것이다.
<바른 것을 구(求)한다>는 것은 그것의 그릇됨을 깨달아서 늙음과 병과 죽음을 벗어나 인간(人間)의 온갖 고뇌(苦惱)를 완전히 떠난 경지(境地)를 구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릇된 것만을 구(求)하고 있구나’라며 번뇌(煩惱)에 잠겼다. 세월(歲月)이 흘러 왕자(王子)의 나이 29세가 됐다. 아들 <라후라(羅?羅)>가 태어났다. 드디어 왕자(王子)는 출가(出家)를 결심(決心)했다. 마부(馬夫) ‘챤다카’를 거느리고 백마(白馬) ‘칸타카’에 올라 탔다. 비로소 궁전(宮殿)을 빠져 나와 출가(出家)했다.
이때 악마(惡魔)가 재빨리 달라붙어 “궁전(宮殿)으로 돌아가서 때를 기다려라. 머지않아 이 세계(世界)가 전부 네 것이 될 터이다.”라며 속삭였다. 그러나 왕자(王子)는 “이 지상(地上)에는 내가 구(求)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악마여! 없어져라.”라며 꾸짖었다.
그런 다음 머리를 깎고 걸식(乞食)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왕자(王子)는 먼저 ‘바가바 선인(仙人)’을 찾아가서 진지하게 고행(苦行) 하는 것을 살펴봤다. ‘아라다 칼라마’와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를 찾아가 그들의 수행(修行)을 보고 직접 실행(實行)해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깨달은 왕자(王子)는 <마가다국>으로 갔다. 그 곳 가야(伽倻) 마을 옆을 흐르는 나이란쟈나(尼連禪河) (강江)가의 ‘우루빌바 숲’ 속에서 격렬(激烈)하게 고행(苦行)하기 시작(始作)했다. 부처님 스스로 “과거(過去)의 어떤 수행자(修行者)도, 현재(現在)의 어떠한 고행자(苦行者)도, 또 미래(未來)의 어떠한 출가자(出家者)도, 이보다 더한 고행(苦行)을 한 자(者)는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서운 6년 간의 고행(苦行)이었다.
하지만 이 고행(苦行)도 왕자(王子)가 구(求)하는 것을 주지는 못했다. 왕자(王子)는 미련없이 6년이라는 세월(歲月) 동안 닦아왔던 고행(苦行)을 던져버렸다. 왕자(王子)는 ‘나이란쟈나(尼連禪河) 강(江)’에서 몸에 쌓였던 때를 씻어냈다. ‘수자타라’ 여인(女人)에게서 우유죽을 받아 마시고 건강(健康)을 회복(回復)했다. 지금까지 왕자(王子)와 함께 숲 속에서 고행(苦行)해 왔던 출가자(出家者)들은 왕자(王子)가 타락(墮落)했다며 다들 떠나갔다.
세상천지(世上天地)에 홀로 남겨진 왕자(王子)는 조용히 나무 밑에 자리 잡고 앉아 목숨을 걸고 최후(最後)의 사유(思惟)에 들어갔다. “피가 마르고 살이 찢기고 뼈가 썩을지라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決心)했다. 왕자(王子)는 마음의 마구니들과 처절(悽絶)한 전투(戰鬪)를 벌였다. 흐트러진 마음, 들뜬 마음, 검은 마음의 그림자, 추한 생각의 모습 등 마음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온갖 생각들이 악마(惡魔)의 군대(軍隊)처럼 총공세(總攻勢)를 펼쳤다.
그것들을 찾아내 갈기갈기 찢어 없앴다. 피가 튀고 살이 벗겨지며 뼈가 부서지는 악전고투(惡戰苦鬪)였다. 격렬한 싸움이 끝나고 동틀 무렵 반짝이는 샛별을 우러러 보았다.
그때 왕자(王子)의 마음은 찬란히 빛났다.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된 것이다.
왕자(王子) 나이 35세 되던 해 (음력12월 8일. 부처님 성도일(聖道日))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이때부터 왕자(王子)는 불타(佛陀), 무상각자(無上覺者), 여래(如來), 석가모니(釋迦牟尼), 석존(釋尊), 세존(世尊) 등의 여러 이름으로 세상(世上)에 알려졌다.
먼저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 한 마음으로 고행(苦行)하며 지냈던 다섯 사람의 출가자(出家者)들에게 도(道)를 설(說)하고자 그들이 사는 사대성지(四大聖地) 중 한 곳인 인도(印度) 북부(北部) 우타르푸라데시 주(州) ‘바라나시(市)’의 ‘므리가다바’ 사슴정원 ‘사르나트(녹야원.鹿野園)’으로 갔다.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자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르침을 들은 뒤에는 부처님의 최초(最初)의 제자(弟子)가 됐다.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 ‘라쟈그리하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敎化)해 그곳을 근거지(根據地)로 삼아 법(法. 가르침)을 펼쳤다. 부처님 최초의 설법(說法)은 대화(對話)와 토론(討論)을 통한 <중도(中道)>, <사성제(四聲諦)>,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이었다. 이때 ‘샤리푸트라(사리불.舍利弗)’와 ‘마우드가루야야나(목건련.目?連)’를 비롯한 2천 여 명의 제자(弟子)들이 함께했다.
또한 아버지 ‘슛도다나왕’과 길러주신 어머니 ‘마하프라쟈파티’, 왕자비인 ‘아쇼다라’를 비롯한 석가족(釋迦族) 사람들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歸依)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45년> 간의 전도여행(傳道旅行)을 통해 <8만 4천(八萬四千)>의 법문(法門)을 펼쳤다. 이루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고 따랐다. 부처님께서는 영취산(靈鷲山.기사굴산)에서 45년간 설법(說法)했다. 이곳에 25년 동안 머물면서 현존(現存)하는 경전(經典)의 80%를 설(說)했다.
특히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제일(第一) 첫머리에 나오는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 불(佛) 재사위국(在偉舍國)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에서 여대비구중(與大比丘衆)들을 향해 <금강경(金剛經)>과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했다. 어느새 부처님께서 80세를 맞았다. 부처님께서는 ‘라쟈그리하 왕사성(王舍城), 최초의 불교사원 죽림정사(竹林精舍)로부터 북인도(北印度) 코살라국의 서울 ‘슈라바스티(사위성.舍衛城)’ 기원정사(祇園精舍)로 가던 도중에 ‘바이샬리’에서 병(病)이 들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석 달 뒤에는 열반(涅槃)에 들 것”이라고 예언(豫言)했다. 전법여행(傳法旅行)을 계속하면서 ‘파바’에 이르렀을 때, 대장장이 ‘춘대’가 올린 음식물에 체해 병(病)이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쿠시나가라’로 들어가 성(城) 밖의 사라나무 숲으로 가서 사라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사이에 누웠다.
부처님께서는 최후(最後)의 순간(瞬間)까지 제자(弟子)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대들은 각자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依支處)로 삼아야 한다. 남을 의지(意志)해서는 안된다. 이 법(法)을 등불로 삼고 의지처(依支處)로 삼아야 한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다른 가르침을 의지처(依支處)로 삼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몸을 관찰(觀察)해 얼마나 더러운가를 깊이 깨달아서 그에 탐하지 말라. 괴로움과 즐거움이 모두 괴로움의 원인(原因)이 된다고 생각해 집착(執着)하지 말라.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觀察)해서 그 속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생각해 그것들에 미혹(迷惑)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모든 괴로움을 끊을 수 있다. 가르침의 요점(要點)은 마음을 닦는데 있다. 그러니 탐욕(貪慾)을 억제(抑制)해 스스로를 이기고자 노력(努力)해야 한다. 탐욕(貪慾)을 멈추고 화(禍)를 내지 않으며, 악(惡)을 멀리하고, 늘 덧없음을 기억(記憶)해 마음의 주인(主人)이 되어야 한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진리(眞理)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부처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 서로 화합(和合)하고 존경(尊敬)하라. 같이 배우고 같이 닦아서 서로 노력(努力)해 가르침(法)을 지키고, 진리(眞理)의 기쁨을 함께 나눠라. 부질없는 일에 마음을 쓰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浪費)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精進)해서 깨달음의 꽃을 따고, 진리(眞理)의 열매를 거둬라. 이 가르침대로 행(行)하지 않는다면 <나를 마주하고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처럼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가르침대로 행(行)한다면 그 사람은 비록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결국 부처의 본질(本質)은 깨달음이다. 늘 깨어서 부지런히 수행(修行)해 자기(自己)속에 있는 자기(自己)의 마음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념념자각(念念自覺) 본래진면목(本來眞面目)>
나의 가르침(法)을 아는 자(者)만이 나를 볼 수 있듯이, 비록 육신(肉身)은 멸(滅)하지만 깨달음은 영원한 진리(眞理)속에 살아있다. 이제 내게는 아무런 비밀(秘密)이 없다. 안도 없고 밖도 없이 내 삶의 후반 45년 동안 설(說)해야 할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설(說)했다.
그러니 부질없이 슬퍼하지 말라.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남겨놓은 법(法)이 그대들의 스승이다. 나를 섬기듯 이 법(法)을 잘 지키고 소중히 지녀야 한다.”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겼다.
부처님께서는 세간(世間)의 대도사(大導師) 부처로서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치고 고요히 열반(涅槃)에 드셨다. ‘쿠시나가라’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열반(涅槃)을 비통(悲痛)해 하며 ‘아난다’의 지시에 따라서 법도(法度)에 맞게 부처님의 유해(遺骸)를 화장(火葬)했다. ‘마가다국왕 아쟈타샤트루’를 비롯한 8대국의 왕(王)들은 부처님의 유골(遺骨)을 서로 나누어줄 것을 바랐다.
하지만 부처님의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사람들은 거부(拒否)했다. 부처님의 유해(遺骸)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자 현자(賢者) ‘드로나가’ 재치있게 유골(遺骨)을 팔등분(八等分)해서 8대국(八對國)에 고루 나눠주었다. 이밖에도 유해(遺骸)를 담았던 단지를 비롯해 화장(火葬)한 재(災)를 받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 봉안(奉安)했다. 이로써 세상에 <부처님의 10대탑(十大塔)>이 세워졌다.
<제2장>
영원한 부처님 <제1절 자비(慈悲)와 서원(誓願)>
부처님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다. 온갖 수단을 다 기울여 모든 중생(衆生)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다른이와 함께 아프고 함께 괴로워 한다. 부처님께서는 석가족(釋迦族.샤카)의 왕자(王子)로 태어나 출가(出家)해 고행(苦行)하고 진리(眞理)를 깨닫고 가르침(法)을 설(說)하고 죽음(死)을 나타내 보였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수행(修行)을 시작하면서 네 가지 큰 서원(誓願)을 세웠다. <첫째 모든 중생(衆生)들을 건지기를 서원(誓願)했다. 둘째 모든 번뇌(煩惱)를 끊을 것을 서원(誓願)했다. 셋째 모든 가르침(法)을 배울 것을 서원(誓願)했다. 넷째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를 서원(誓願)했다.>
부처님은 살아있는 목숨을 빼앗지 않는 공덕(功德)으로 사람들이 오래 살기를 원(願)했다. 주지않는 것을 빼앗지 않는 수행(修行)의 공덕(功德)으로 사람들이 구(求)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를 원(願)했다. 사음(邪淫)하지 않는 수행(修行)의 공덕(功德)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고, 또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기를 원(願)했다.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수행(修行)의 공덕(功德)으로 사람들이 진실(眞實)을 말할 수 있는 마음의 고요함을 알게 되기를 원(願)했다. 남을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 수행(修行)의 공덕(功德)을 닦아 사람들이 화합(和合)하고 진리(眞理)를 말하기를 원(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