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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오 주간의 남도 여행기....남도 답사 1번지 강진 - 천년의 신비가 살아 숨쉬는 청자골 강진!
  • 기사등록 2016-07-21 18: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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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제 정원

그 곳에 지난 6월 말 부산시 관광협회(회장=이태섭) 국내분과 위원회 일행이 1박2일 일정으로 답사 했다.

부산역에서 일행을 태운 버스가 11시30분경 강진 도착, 점심을 먹은뒤 강진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을 찾았다.

 

*강진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

 

전라병영성
전라병영성은 조선시대 610년간 호남,제주를 총괄하는 육군의 총지휘본부로 53주6진을 통치 했을때 축조 됐다.
 
석축의 둘레는 2820척, 높이 18척 이다. 남문, 동문, 북문으로 이뤄져 있으며 연회장, 객사 등 15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허물어진 성곽 보수가 한창 이다. 병영성 앞쪽에는 하멜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일본으로 가던중 풍랑으로 배가 제주도로 표착, 서울로 압송, 여수 등지로 거쳐 13년간 이 곳으로 억류돼 생활 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와 하멜 동상, 그리고 기념관이 있다.

 

*무위사

무위사는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국보13호로 지정돼 있으며 원래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 가로4m 세로 7m 크기의 후불탱화만 남아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후 한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 보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도 49일째 되는 날 스님이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 보니 파랑새 한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파랑새가 붓을 뱉어 버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하는데 지금도 후불탱화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고 한다.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에 의하면, 무위사는 원효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 되었다고 전한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逈微, 864~917)가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 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水陸社)로서 유명했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제(水陸第)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이다.

 

*다산과 당대 최고 지식인들이 즐겨 찾던 백운동 별서정원

 

백운동 별서정원 연못
동백나무 군락과 비자나무 숲을 지나 오솔길에 白雲洞(백운동)이라 새겨진 바위가 나온다. 담장을 끼고 흐르는 물길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면 백운동 별서정원이 눈앞이다.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3대 정원인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은 이담로 이래 지금까지 12대에 걸쳐 가꾸고 보존해온 아름다운 정원이다.

 

400년전 이담로가 백운동이라 바위에 새기고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 즐기기 위해 20여년간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1812년 강진에서 유배중이던 다산이 월출산에 산행을 갔다가 이 곳에 반해 하룻밤 잠을 청한다. 다산은 백운동 별서의 아름다움을 시로 짓고 제자 초의에게 풍경을 그림으로 담게 한다. 이에 이담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예술가들과의 인연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후손들에게 시와 그림이 담긴 백운첩을 지키라는 말을 남긴다. 지금도 후손들은 백운동 별서와 다산 초의의 흔적이 담긴 기록들을 보존해 있다고 한다.

                                                                                                                                 

 / 편집자·주 - 별서(別墅)=농장이나 들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모란이 피기 까지’의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

강진 군청 바로 옆에 위치한 영랑 생가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영랑은 1903년 이 곳에서 5남매중 맏이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강진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켜 일본순사에 잡혀 6개월을 감옥생활을 했다. 그 후 1930년 시문학지를 창간,‘모란이 피기까지는’‘동백앞에 되는 마음’등 작품을 발표 하였다.

 

그러다 6.25전쟁때 포탄 파편을 맞고 47세의 젊은 나이에 하늘 나라로 갔다. 생가 맞은편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랑 문학관이 있고 앞마당은 잔디가 심어진 이쁜 정원이 있어 관광객이 이 곳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사의제(四宜齊)

사의제 뒤 주모상
다산(茶山)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때 4년간 머문곳이다.

사의제는 다산 자신에게 4가지 경계를 말한다. 유배를 당해 낙담해 있는 그를 행해 주막집 할머니가“어찌 그리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두어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질책하자 다산은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 용모, 언어, 행동 등 4가지를 자신에게 다짐했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이다. 다산은 이 곳에서 4년간 기거 하면서 황진 등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뒤 쪽 잔디밭에는 주모와 딸의 동상이 제막 돼 있고 연못·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주민은 물론 관광객이 늘 찾는 곳이다.

 

*향기의 섬  가우도

 

향기의 섬 가우도의 출렁다리
때묻지 않아 좋고, 자연 그대로 즐기며 힐링 할 수 있는 곳, 걸어서도 갈수 있는 곳 이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 마치 소가 누워 멍애를 매고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가우도라 불린다.


전남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가우도의 특징은 배를 타고 들어 가는것이 아니라 강진읍~다산초당 방향으로 가다 해안도로를 따라 도암면 망호에서 망호 출렁다리(716m)로 해서 섬에 갈 수 있다.


해안도로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로 2.4km를 걷다 보면 삶의 시름을 다 잊을 수 있다. 출렁다리라고는 해도 다리가 흔들리지 않으며, 걸을때 주변 바다를 내려다 보면 물결이 출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붙어 출렁다리라 한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 백련사

 

백련사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

통일신라 말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명종 때인 1170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본래 만덕산의 이름을 본떠 만석사라 하였으나, 고려후기 백련결사 이후 백련사로 부르고 있다.

 

석축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현재는 만경루가 가장 앞에 배치되어 있으나, 당초에는 만경루 앞에 해탈문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백련결사를 열어 80년간 민중불교 정화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고려 8국사와 조선 8대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적비- 조선숙종 7년(1681년)에 세워진 사적비로, 절의 위치와 연혁, 원묘국사의 백련결사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조중지가 고려시대 문인 최자의 글씨를 본떠 새로 썼다는것을 알 수 있으며, 귀부는 고려시대의 것이고 비산과 이수는 조선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부응로 고려 명종때 원묘 국사에 의해 중수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효종때 중수된 것이며, 대웅보전과 만경루의 편액은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동백나무 숲- 백련사 주변 5.2ha, 면적에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비자나무와 후박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3, 4월경 붉은 동백꽃이 만개 후 바닥에 떨어진 퐁경이 장관이다.

 

*다산 초당 - 다산~혜장선사가 걷던 뿌리의 길·사유(思惟)의 길

다산 초당은 강진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다산 초당 올라가는 뿌리길

만덕산에는 야생차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茶山 이라고 불러졌으며 선생이 기거하던 초당도 이런 연유에서 다산 초당이라 불려졌다. 선생 역시 다산이라는 호를 얻게 됐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0년간이  초당에서 기거하면서 목민심서 등 500여권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茶山艸當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깍은 丁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왼쪽에는 자그마한 연못, 앞뜰에는 藥泉 이라는 약수터에서 물을 떠서 차를 끓여 먹었다고 한다.
다산 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이 800m가량의 좁은 고갯길에는 다산과 제자들이 나눈 토론과 사색의 체취가 오롯이 스며 있다.

 

길 주변에는 동백나무, 차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등 온갖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다산은 고갯마루에서 잠시 사색의 끈을 늦추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했을터, 제자 중, 이 길을 가장 많이 오갔던 이는 한때 백련사 주지로 있었던 헤장선사 이었다. 혜장이 밤늦게 고개를 넘어 불쑥 초당에 들이닥치는 일이 잦아 다산은 늘 방문을 열어 놓곤 했다.


다산과 혜장은 1805년 처음 만났다. 당시 다산의 나이 51세, 혜장은 34세 였다. 혜장은 이미 30세에 거찰 해남 대흥사(당시 대둔사)가 연 전국 불법대회를 주재할 정도의 대단한 학승이자 선승이었다. 주역을 줄줄 외는 혜장을 다산은 지식의 허를 찌르는 한 마디의 물음으로 제압했고,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까가워져 때론 사제로, 때로는 친구로 지내며 6년간 단꿈 같은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혜장은 불자로써 도에 이르지 못함을 한탄하다가 과음으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입적 했다, 혜장이 입적하고 난 뒤 다산은 한동안 초당에서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은 역사적 장소를 답사 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기본 임을 이 곳 다산 초당에서 느낀다.

 

*강진 오감통


음악창작소 오감통 실내공연장
강진시장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통은 108여개가 넘는 현대화 점포시설을 갖추고 전통적인 문화, 행복과 삶의 만족이 가득한 웰빙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강진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감통은 오랜세월동안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한정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음악인들의 공간인 넓은 잔디광장에 공연장을 갖추고 토요일마다 공연을 연다.


잔디 공연장옆 2층 규모의 음악창작소는 음악스튜디오, 음악카페, 실내공연장 및 게스트룸이 갖추어져 있다. 강진원 강진군수가 우리답사 일행을 위해 1시간30분 동안 특별공연을 해줬는데 클래식과 오페라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송태왕 테너, 박선경 소프라노, 김은희 피아노 그리고 문형식DJ의 멋진 멘트가 오감을 자극 시킨다. 전국 200여개 넘는 기초 지자체 중에서 유일하게 강진군에만 있는 음악 창작소다.

 

*전라남도 관광사찰로 지정된 강진 남미륵사

세계 최대 황동 아미타부처님(좌불높이 36m)이 인연있는 불자님들에게 소원성취를 이뤄지게 하는 남미륵사는 전라남도 관광사찰로 지정돼 있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면 일주문 양옆으로 500 나한상이 맞이한다.

 

대웅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33석탑, 해수관음보살, 코끼리상, 그리고 연못에는 수련꽃 숲길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남미륵사 주지 법흥 스님은“불자들이 와서 마음 치유하며 행복도량으로 불사를 하려는데 땅이 부족하여 불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한다.


답사 일행을 따듯하게 맞이해준 강진원 군수님, 박수철 부군수님, 이준범 관광과장님께 감사 드리고 늘 같이 동행해준 임석 문화관광재단 대표께도 감사 드린다.

 

2016년 7월30일~8월7일 까지 청자촌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명품‘강진 청자 축제’가 개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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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7-21 18: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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