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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제신문
     김문준 전무
새로운 일본왕 즉위식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중국식의 웅장하고 장엄함이 아니라 깊은 엄숙함을 보여주는 듯하였으나, 일본 국민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약간의 재미를 느끼게 하였다. 옛 풍습을 재현한 듯 각종 의례와 복장, 행동들이 마치 인형극을 보는 듯했다.  일본 왕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다. 일본의 관변학설로는 2700년, 학계 통설로도 1500년에 걸쳐 일본에서 왕위를 계승 했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고대 일본 귀족들도, 창칼로 천하를 제패한 사무라이들도 천황을 폐하고 그 자리를 욕심내지는 않았다. 이런 오래된 역사를 거치면서 일본왕은 일본인에게 신격화 되어있다. 

 태평양전쟁 패전에도 일본왕의 권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일왕은 더 이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1989년 초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때 일본인들이 보여준 ‘1억 총 자숙’(1억 명의 국민이 자숙한다는 뜻) 분위기는 이를 증명한다. 지금도 일본 국민의 절대 다수가 일본왕실을 지지한다. 이러한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5번째의 일본왕, 나루히토(연호는 레이와)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 계기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것이었다. 우익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독도에도 상륙했지만 일본 여론에 미친 영향은 일왕 문제에 비교도 안 되었다. 독도 문제에는 한국에 이해를 표하던 많은 일본 지식인들도 일왕 사죄 발언 앞에서는 등을 돌렸다. 

 

 일본인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니,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일왕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감안하고 계산하면서, 잘 대치하자는 것이다. 일본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정확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일왕을 상대로는 섣부른 애국심보다는 전략적으로 그 존재의 무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얕은 애국심으로 국익에 깊은 손해를 끼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아키히토 상황은 재임 시 일본 정사인 속일본기에 자신의 직계 조상인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한국에 호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졌다. 아베 총리의 강경한 대아시아 정책에 대해선 거리를 두어왔다. 지금 같은 한일관계 분위기에서 다소 무례한 제안으로 들릴지도 모르나, 이제 일왕 자리에서 내려온 그의 희망을 양국이 한번 신중히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일관계는 논리나 증거 싸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양국 국민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여론을 휘어잡을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일본 왕이 한반도를 방문한 적이 없다. 비록 전임이지만, 얼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아키히토 일왕이 옛 조상을 찾아 무령왕릉에 오고, 그걸 계기로 두 나라가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답게 문제점을 처리한다면, 한, 일 양국을 위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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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1-18 12: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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