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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79주년 기념식이 3월29일 11시에 매헌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를 계기로 윤봉길의사의 생애를 한번 더 생각해 봄은 어떨까? 윤봉길의사는 일제관헌에게 체포되어 거듭되는 혹독한 심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조선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본에 반항하여 독립함은 당장은 불가능 할 것이다. 강국피폐의 시기가 도래하면 그때야말로 조선은 물론이고 각 민족이 독립하고야 말 것이다.

강국이라고 할지라도 나뭇잎과 같이 자연조락의 시기가 꼭 온다는 것은 필연의 일로서, 우리들 독립운동자는 국가성쇠의 순환을 앞당기는 것으로써 그 역할로 삼는다.

물론 한두명의 상급 군인을 살해하는 것만으로 독립이 용이하게 실행될 리는 없다. 따라서 금회의 사건과 같은 것도 독립에는 당장 직접 효과가 없음은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오직 기약하는 바는 이에 의하여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명료히 알게 하는데 있다.

현재 세계지도에 ‘조선’은 일본과 동색으로 채색되어 각국인은 조선의 존재를 추호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차제에 ‘조선’이라고 하는 개념을 이러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넣는 것은 장래 우리들의 독립운동에 관하여 결코 도이가 반드시 아님을 믿는다.

따라서 잃어버린 ‘조선’의 존재와 이름을 온 세계에 깊이 새겨 넣도록 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에 반드시 도움될 것을 확신하여 의거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윤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로 그 침략군의 시라가와 사령관과 시게미스 주중공사 이하 침략자의 군관의 수뇌가 폭사 응징되는 대 타격을 받았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는 한중 양민족의 항일 연대관계를 회복 강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인은 한국인의 입장을 옳게 알게 되고 일제의 조작이 백일하에 드러나 그 후 한중 양민족의 연대와 중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이 순탄하게 전개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또한 윤의사의 상해의거는 국민대표자대회 이래 침체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활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임시정부와 긴밀히 연결된 윤의사의 상해의거는 중국관민의 두터운 지지와 큰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장개석(將介石) 총통은 김구 임시정부 주석과 회담하여 앞으로 임시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그가 교장으로 있는 중국군관학교에 한인장교훈련반을 설치하여 후일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창설의 기초를 세웠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는 그 후 1945년 일제 패망때까지 일관되게 군정 양방면에서 후원하였고 임시정부 후반기의 활동을 크게 도왔다.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는 우리 민족의 민족의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고 독립사상을 크게 고취시켰으며 한민족의 독립운동 실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국내외에 알려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와 독립의지를 부각시킨데 크게 이바지 했다.

윤봉길의사와 같은 선열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들이 솔선수범정신으로 청소년들과 젊은 여성들에게 올바른 사고와 나라사랑 정신을 제고토록하여 앞으로는 절대 북한의 무력도발의 염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경제.문화적으로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고생하지 말고 잘 돌파할 수 있도록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새롭게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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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1-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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