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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훈 부경대 명예교수
(전 정교모 부산지부장, 한국수필가)

근년 들어 우리나라가 두 쪽으로 나뉜 것 같다. 선거 때마다 경험하지만, 지난 6월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링컨의 말이 떠오른다. “스스로 분열된 집은 서 있을 수 없다(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왜 이리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Freedom에 만족하고 Liberty를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 보고 싶다. 


함께 잠시 생각해 보자. 사실 우리말에 ‘Freedom’이나 ‘Liberty’는 다 같이 ‘자유(自由)’란 말로 통한다. 애써 구분하려고도 않는다. 그 ‘차이(差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제대로 교육받은 기억도 없다. 애당초 이런 말들이 해방 이후부터 쓰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 둘의 차(差)는 분명히 있다. ‘Freedom은 감각적인 자유’다. 그래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표현, 이동, 소비, 종교, 진로의 자유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필자는 ‘본능적’ 자유라 보고 싶다. 


문제는 ‘Liberty’이다. 이건 ‘제도와 권리, 견제와 감시를 요구하는 자유’다. 그러기에 제대로 배우고 훈련 안 받으면 잘 느끼지 못하는 자유다. 다른 말로, ‘법(法)(특히 성문법)에 보호를 받는 자유’다. 중요한 건, 누군가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이해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참여와 투쟁까지 수반한다는 점이다.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 필자는 ‘교육적 자유’라 보고 싶다. 이런 ‘Liberty’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정도면 자유롭지 않냐?”는 식의 자기위안 속에서 자기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오늘날 민주주의 초석이 된 건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운동’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시민이 ‘왕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혁명이었고, 미국 독립 운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내용 상으로는 모두 ‘시민 자유(citizen liberty)’의 쟁취운동이었다. 당시, 우리가 잘 아는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란 말도 실은 ‘Freedom’이 아닌 ‘Liberty’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 우리도 많은 민주열사가 목숨 걸고 싸웠다. 소위 ‘6.29 선언(1987년)’은 이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그때 무엇을 위해 싸웠나? ‘Liberty’였다. 그 시절, 군사정권이었어도 이미 표현, 이동, 소비, 종교, 진로의 자유(Freedom)를 우리는 모두 누리고 있었다. 누리지 못했던 건, 헌법 제1조에 명시는 되어 있으나 무시되었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권리였다. ‘국민(citizen)의 Liberty’요, 또 ‘나의 Liberty’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 직선권(直選權)’을 얻었다. 말하자면 ‘6.29 선언’은 국가가 잘못할 때 이를 항변할 수 있는 ‘국민저항권’의 값진 결과물이었다. 


독재(獨裁) 정권하에서 이런 ‘Liberty’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권 잡은 이들이 입맛(?)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를 반대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누가 ‘국민저항권’을 허용하고 싶겠는가? 다 아는 것처럼, 독재란, 국가의 권력(입법, 사법, 행정)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하나나 둘을 억압하고 장악해 국가의 ‘삼권분립(三權分立)’이 붕괴할 때 발생한다. 그 삼자 간 허용된 Liberty가 붕괴하였을 때다.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을 다시 맞이한 건 아닐까? 지난 세기엔 ‘행정부의 독재’를 경험했는데, 지금은 되레 ‘입법부의 독재’를 느끼는 듯싶다. 문제는 지난 ‘6월 대선’에서 50% 가까운 국민이 이를 용인하고 지지했다는 점이다. 실로 ‘자기의 신성한 권리가 침해되는 걸 못 느끼는 사회’가 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그때(6.29 선언) ‘민주 투쟁’에 핵심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이 오늘날 핵심 정치인이 되어 그들이 쟁취했었던 ‘Liberty’를 되레 망치고 있는 것 같다. 실로 체제(體制)가 바뀌어 저 자라나는 내 어린 손주들이 ‘보트 피플’이 될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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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23 20: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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