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훈 칼럼니스트
홍철훈 부경대 명예교수
(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
생존 현장이다. 그물이나 낚시만 있으면 배 타고 바다에 나가 당장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어서다. 그러기에 뱃길은 곧 그들의 생존의 길이었다. 그러니 바다를 주름잡는 해류들이 그들과 무관할 리 없었다.
오늘날 북태평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쿠로시오’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흑조’라 불렸다. 일본말 ‘쿠로시오’의 한자어 ‘黑潮’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부른 것인데 이제는 ‘쿠로시오’가 세계 공식어가 되어 우리도 그렇게 바꿔 부른다. 쿠로시오는 말 그대로 풀어보면 ‘검은 조류(潮流)’를 뜻한다. 실은, 이렇게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오래전부터 동중국해에서 고기 잡던 일본 어민들이 북동쪽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발견하고 그 물색이 검게 보였다 하여 붙여졌다 한다.
공교롭게도 이 해류가 워낙 빠르고(2~5노트),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거대한 해수를 수송(초당 약 6천만 톤)하면서 바다의 각종 어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의 수산학자나 해양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북태평양의 가장 중요한 해류인 쿠로시오가 사실상 ‘어민’의 ‘조업활동’으로부터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적도 바다에 가면 소위 ‘적도잠류’ 또는 ‘크롬웰 해류’라 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또 하나 거대한 해류를 만나게 된다. 최고 속도는 3노트에 달할 만큼 빠르고, 미시시피강 수송량의 1,000배에 달한다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남을 알 수 있다. 이 해류는 산소량과 영양염이 풍부해 적도 해상에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갈라파고스섬 근처에서는 용승(湧昇; 저층에서 물이 올라오는 현상)을 일으켜 이 해역 펭귄의 먹이를 제공해 서식처를 만든다. 문제는 이 해류가 그 거대함을 자랑하면서도 적도 해수면 바로 아래 약 90m 지점에 숨어서 흐르다 보니 그 존재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 1951년, 어민들이 적도상에서 참치잡이 연승어업(延繩漁業; 긴 줄에 많은 낚시를 매달아 물속에 넣어 주로 참치잡이를 수행하는 어업)을 수행함에 그 시험조업을 위해 연구자들이 그곳에 ‘연승(longline)’ 어구를 투하했다가 약 90m 지점에서 어구가 동쪽으로 급히 표류해 깜짝 놀란 일이 벌어졌다. 이 해역 표층에는 보통 북동무역풍의 영향을 받아 서쪽으로 흐르는 해류가 있는데 저층에 돌연 반대쪽으로 흐르는 빠른 흐름이 있어서였다. 이에 이듬해인 1952년, 미 해양학자 Townsend Cromwell이 주도한 본격적인 해양관측이 수행되면서 비로소 이 해류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셈이다. ‘크롬웰 해류’라 함은 발견자의 이름을 기려 지어졌다.
그러니까 어민들의 조업이 이 거대한 해류를 발견케 한 동기가 된 셈이다. 어민들은 경험상 조경수역(潮境水域)이 좋은 어장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성질이 다른 두 해류(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경계해역이라 물고기가 잘 모여들어서다. 어민들의 어획량을 극대화하는 쿠로시오나 쓰시마난류가 만드는 조경수역에 어민들이 조업차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양 조사로, 이런 조경수역은 활발한 해수 혼합으로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플랑크톤이 증식해 좋은 어장 조건을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일이다.
동해에 관한 연구가 20세기 초에 이미 일본 수ㆍ해양학자들에 의해 대다수 이루어졌는데, 그 연구 동기나 재정지원이 우선 동해에서 자국 어민들의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함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양 조사가 단순히 ‘과학적 탐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민의 ‘경제적 수익’과 맞물려 있음을 시사하는 바다. 종래 우리나라 주변 해양에 관한 연구에 어민 수익이 우선시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향후 이점에 좀 더 연구의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