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열 화명고등학교 교장
이상열 화명고등학교 교장
우리꽃 우리나무 연구소 대표캄차카반도 앞 오호츠크해(海)가 바로 우리 동해의 근원이다. 옛날 우리나라 여러 소국 중 하나였던 옥저(沃沮)는 고조선에 속한 한 부족 국가였고 당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옥저라는 이름이 지금 실효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 말로 옮겨져서 ‘오호츠크’라고 부른다. 물론 필자의 역사적 추론이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 거칠고 차가운 원시림의 캄차카에서 출발하여 동해를 호위하면서 뻗어 내린 산맥이 연해주를 거치고 함경도를 거쳐 백두대간을 이루고 내려왔다. 마지막 백두대간의 끄트머리 토함산에서 다시 천성과 대운산으로 갈라져 부산으로 이어진다. 천성산은 다시 금정산과 백양산 그리고 승학산으로 이어져 몰운대에서 바다와 접하고, 대운산으로 뻗은 한 갈래는 달음산과 장산으로 이어져 또다시 바다와 접한다. 그래서 부산은 저 멀리 캄차카에서 출발한 정기가 모두 한곳으로 모여 만든 장대한 도시가 되었다.
옛날 동래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땅이 넓어서 삼국시대 초기 즉 원삼국시대에는 여기에 거칠산국이라는 나라가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의 울주지역 일부(서생), 기장, 동래, 금정, 해운대, 수영, 연제가 모두 옛날 동래였던 시절이 있었다. 행정구역 개편 등으로 차츰 강역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동래구라는 지역 명칭 안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4대 탈해왕(57-80) 재위 사절에 “거도(居道)”라는 사람이 기발한 계책을 사용하여 경주지역에 머물러 있던 신라의 영역을 오늘날 부산지역으로까지 넓혔다고 한다.
'거도(居道)는 그의 성이 전해지지 않아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가 탈해 이사금을 섬겨 간(干)이 되었을 때 우시산국(于尸山國:현재의 울주)과 거칠산국(居漆山國:현재의 동래·기장·해운대)이 신라 접경에 끼어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이 되었다. 거도(居道)가 지방관리가 되어 몰래 그 나라들을 병합할 뜻을 품고 매년 한 번씩 말 떼를 장토 들판에 모아놓고 병사들을 시켜 말을 타고 달리게 하는 것으로 오락을 삼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마숙(馬叔:말 아저씨)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늘 보아왔으므로 신라 사람들의 통상 행위라고 생각해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에 거도(居道)가 불시에 군사를 일으켜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조선(고조선)이 멸망하고 난 후 많은 유민이 최초의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연해주로 흩어져서 많은 소국(小國)을 이루어 갔다. 특히 만주와 한반도의 마한, 진한, 변한이 여러 소국을 통합해 가면서 서서히 왕조국가를 만들어 나갔다. 그중에서 서라벌에 자리한 진한은 원래 고조선 세력의 가장 중심지였던 만주의 중앙지역을 직접 통치하던 단군 세력이 이주하여 새로 만든 집단이었다.
그 진한의 중심에서 원래 출발이 미약했던 사로국이 서서히 주변 소국을 정벌하고 통합해 나가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가야와 사로국 중간쯤 위치한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우선적으로 사로국에 통합되고 위로는 울진 삼척의 실직국(悉直國)과 안강지역의 음즙별국(音汁伐國)이 차례로 신라에 복속되었다. 차차 세력을 키운 신라는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정복하여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여하튼 신라의 탈해왕 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점령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바다에 면한 당시의 울주 지역과 동래 지역을 장악했다는 것은 해상교통로를 확보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본래 사로국에서 출발한 연합세력이 신라는 왕국의 발전하면서 고립된 경북 내륙지역에서 벗어나 주변국들은 물론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교역하기 위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할 목적으로 두 나라를 정복한 것이었다. 이로써 신라는 해상강국 실현에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이후 이 두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서 신라 세력 확장의 중심에서 많은 역사적 현장으로 그 역할을 해왔다. 울주지역의 천전리 석각에서 나타나는 신라 왕족의 근친혼, 왕권승계 문제, 신라 화랑도 수련 등을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법흥왕이 딸 하나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왕위 계승을 위해 동생 사부지 갈문왕(입종)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 자신의 혈연으로 왕위를 이어려고 했지만, 동생 사부지(입종)가 먼저 죽어버리고 얼마 안 되어 법흥왕도 죽자, 법흥 왕비와 딸 지소부인이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입종 갈문왕)와 딸 지소 사이에 태어난 아들(7세)을 왕위에 세우니 이분이 그 유명한 진흥왕이다. 그들의 신라 왕족 가족사의 일부가 천정리 각석에 남아 우리에게 옛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또한 신라 김춘추와 화랑들이 당시 거칠산국 지역에 해당하는 해운대, 태종대 등지를 찾아 수련하고 삼국 통일의 웅비를 품었던 현장이 바로 오늘날의 동래 지역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출중한 인물의 한 사람인 김춘추는 신라를 일약 삼국의 으뜸으로 기틀을 마련한 대정복왕 진흥왕의 손자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진지왕)가 황음무도 죄로 왕위에서 폐위당하면서 성골에서 진골로 품계가 강등되고 찬밥 신세가 되어 5촌 당숙인 진평왕 시대에 숨죽이며 살다가 뛰어난 인품과 지모를 바탕으로 정치적 책략과 시대를 초월한 외교술로 일약 신라 삼국 통일의 출발점을 시작한 태종무열왕으로 등극한다. 그가 화랑들과 함께 수련했던 곳이 바로 부산 영도의 태종대였으며, 부산지역이 바로 그가 시가를 읊으며 남아의 포부를 키웠던 현장이었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들러서 아름다운 바다 안개를 노래한 해운대도 옛 동래지역의 일부였다.
그 부산의 중심에 천성산, 금정산과 백양산, 그리고 승학산이 서로 뻗어 갈빗대를 이루고 있고 동으로는 대운산, 달음산과 장산이 등뼈를 이루고 있다. 오늘 우리가 찾아 떠나는 들꽃 기행은 천성산과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일부가 옛 거칠산국의 중심을 통과하여 동래의 중심부로 이어지고 결국 동래읍성에 닿아있는 작은 산줄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윤산이다. 물론 동래 읍성 인근 지역은 고대 가야에 속한 지역이었음이 복천동 고분군 유물 발굴로 잘 알려져 있다. 즉 동래 이웃 지역은 고대에 여러 소국이 난립하여 경쟁하고 발전해 나갔던 지역이다. 오늘날 우리네 삶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처음부터 경쟁의 원리와 공존의 따스함이 함께 작동하는 곳인가 보다.
윤산(輪山)은 ‘구르다’라는 뜻을 가진 의미에서 잘 구르는 ‘바퀴’ 윤(輪) 자가 이름에 붙여진 산이다. 비록 318미터 높이의 도심 속 작은 산이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제법 큰 위안과 힐링을 베풀어 주는 산이다. 서동에서 출발하는 사람, 부곡동에서 출발하는 사람, 구서동에서 출발하는 사람, 금사동에서 출발하는 사람 모두가 가까운 윤산에서 눈과 마음의 치유함을 얻어간다.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일상에 찌들어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는 필자 같은 소시민도 여기에서는 제법 크게 회동수원지를 바라보면서 크게 숨을 쉴 수 있으니 바로 여기가 ‘치유의 숲’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산에는 철마다 바뀌어 피어나는 들꽃 당번이 정해져 있어서 찾는 이들을 행복하게 맞아준다. 이른 봄철 윤산의 양지바른 곳에는 여기저기 보라색 조개나물꽃이 쥐도 새도 모르게 피어난다. 보라색을 머금은 잎과 줄기에서 위로 솟아 피어나는 금창초와 꿀풀을 달은 보라색 꽃을 풍성하게 피워올린다.
윤산에서 만나는 봄철 들꽃 가운데 부끄러워 그런지 늘 그늘에 숨어 있어서 유난히 보기 힘든 은난초도 5월경에 만날 수 있다. 주로 나무 아래 그늘을 찾아 피어나는 은난초는 하얀색 고고함을 지닌 야생 난초로 우리나라 남부지방 도서 지방에서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맏며느리를 닮아 청아한 은난초를 윤산에서 만나게 되면 당신에게 아마도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약산의 진달래가 부럽지 않은 윤산의 진달래도 분홍 ‘참꽃’으로 피어나서 이른 봄의 서투른 봄기운을 한층 돋구어 준다. 찾아드는 부산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되새겨 주면서 피어났다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그 뒤를 이어 피는 철쭉 수달래 바통을 넘겨준다. 수달래는 저 유명한 헌화가(獻花歌)의 소재로 삼국유사에도 실린 꽃이다. 신라 성덕왕 대에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낭군을 따라가던 수로부인에게 어느 노옹이 그 부인의 아름다움에 취해 부끄러움을 무릎서고 수달래꽃을 한 움큼 꺽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헌화가이다.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함께 윤산을 찾은 독자분의 동행인에게 불러드리고 싶은 노래다.
윤산에 녹음이 짙어갈 즈음하여 5월경에 풀밭에 느닷없이 나타난 타래난초를 만날 수 있다. 특히 회동수원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뒤편 길가에서 만나는 타래난초는 108가지 고뇌를 배배 꼬아서 후손의 안녕을 빌다가 저승으로 향한다는 망자의 넋으로 피어난다는 전설을 가진 들꽃이다.
늦은 봄의 윤산에는 온통 도토리나무라 불리는 꿀밤 나무 6형제가 연두빛 길다란 꽃을 늘어뜨리고 여름을 재촉한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로 구성된 이들 6형제는 별다른 장식도 없이 수수한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향기가 독특한 생강나무와 사촌인 비목나무 꽃은 윤산의 등산로 주변에서 쉬이 만날 수 있는 들꽃이다. 역시 생강나무와 비슷한 향을 가진 비목나무의 자잘한 연녹색 꽃은 나뭇잎 뒤쪽에 숨어 있어서 잎을 젖히고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다.
부곡암에서 출발하여 서동 방향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윤산의 뛰어난 야생화가 무더기로 자라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주로 오래된 무덤가에 무리 지어 피는 하얀색 백선(봉황삼) 꽃은 풍성하고 화려한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만날 수 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윤산이 부산 사람들의 보호 노력 덕분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백선꽃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큰 기쁨이다.
여름철 윤산 들꽃 대표 종이 바로 짚신나물꽃이다. 일명 선학초라고도 불리는 이 노랑꽃은 주로 윤산의 등산로 길가 주변에 잘 자란다. 바르게 곧게 자란 줄기에서 6월에서 8월 사이에 꽃을 피우고 나면 까칠한 갈퀴가 달린 열매를 많이 맺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짚신이나 산짐승의 털에 달라붙어 멀리 이동하여 번식한다고 붙여진 꽃 이름이다.
늦여름부터 가을에 윤산의 물기 축축한 곳곳에서 붉게 꽃을 피워서 등산객의 눈길을 받는 들꽃이 물봉선화꽃이다. 봉선화이되 물을 좋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황이 날개를 부채처럼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여진 봉선화와 매우 흡사한 꽃 모양을 하고 있다. 물봉선화는 전초에 얼국무늬 반점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가을 색이 점점 짙어가는 윤산에는 다양한 들국화가 피어난다. 쑥캐는 아가씨와 불쟁이(대장장이) 사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서 유래한 개쑥부쟁이꽃도 피고, 시집가는 딸에게 달려 보냈던 귀한 약재인 구절초는 ‘음력 구월에 절단하여 약재로 쓴다.’라는 뜻을 가진다. 노랑 산국은 가장 흔한 들국화로 윤산 여기저기 해마다 잊지 않고 피어난다.
늦은 가을로 접어드는 윤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풍은 당연하게도 붉나무 단풍이다. 얼마나 단풍이 붉게 변했으면 그 이름을 붉나무라고 붙였을까! 등산로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가장 늦도록 윤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이다. 분명히 옻나무와 닮았지만, 다른 나무로 전혀 옻이 오르지 않는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옻나무 잎과는 달리 잎줄기에 날개가 붙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늦가을 윤산에는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도토리와 산밤 열매가 다람쥐와 멧돼지를 살찌우고 다가올 겨울을 불러들인다. 여름철 그렇게 싱싱하던 모든 잎을 다 떨어뜨리고 헐벗은 나무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리는 계절에 윤산을 찾아가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지난 일들을 되씹어 보면서 다가올 세월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외로운 겨울 윤산도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