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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화명고등학교 교장눈과 얼음 그리고 활화산의 땅 캄차카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정기가 연해주를 거쳐 남으로 달려오다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만주로 한 줄기 뻗어 내리고 다른 한 줄기는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태백산으로 이어지고 함월산과 토함산을 거쳐 천성산과 금정산으로 이어져 부산에서 용솟음친다. 금정산은 실제로 ‘금정 산맥’이라 불러도 좋을 법하다. 백양산과 승학산을 거느리고 부산의 주산으로 대부분의 부산 사람을 보듬어 준다.


필자는 언제나 옛날의 군사용 성이나 오래된 산성을 만날 때마다 특이하게도 영화 속의 전투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어느 병사가 몸을 날려 성을 기어오르는 적병을 끌어안고 떨어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높은 곳에서 서면 자연스럽게 아래를 보고 움찔 할 터인데 과감하게 몸을 날리다니! 물론 상상 속의 장면이다. 금정산성도 전쟁을 막아낸 긴 세월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상상 속의 그 병사는 참으로 많고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혀 평범한 사람은 하지 못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영화라서 그런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이들이 많았을까도 생각하면서 온갖 상상의 보자기를 펼쳐본다.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닮은 상상 보자기를 펼치면 그 속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무한대로 스스로 자란다.


유럽 전체에 걸쳐 길게 펼쳐진 알프스산맥의 거의 중앙 부분에 스위스의 필라투스 산봉우리가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죄 없는 예수를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에게 내어주어 결국 죽게 만든 죄를 뒤늦게 깨우치고 은퇴 후 돌아온 고국 로마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눈총을 받다가 유유자적 알프스를 올랐고 마침내 이 산봉우리에서 극단적 결심을 하고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알프스산맥 봉우리마다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듯이 우리나라의 산성도 가지각색의 온갖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치열했던 삼국시대부터 끊임없이 몰려드는 왜구들의 발호에 바다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힘없는 백성이 피해당하면 나라에서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산을 골라 방어선을 구축하고 왜적 침공 시마다 모든 백성을 산성으로 불러들여 왜적의 수탈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금정산성은 한때 군사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약 1,000년 전 신라 시대 처음 축조되고 고려와 조선시대 때 중수된 군사 요새였다. 그것도 치열한 전투장이었다. 남해안으로 낙동강으로 들어오는 왜적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흔적이 돌로 남아 세월을 이끼로 덮어쓰고 와글와글 군사들의 고함 소리와 핏자국과 땀자국은 모두 지워 버린 채 지금은 들꽃과 온갖 수목을 벗하여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금정산성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오늘은 용기 있는 군사들의 함성 대신 들꽃의 향을 쫓아 온갖 나무의 소리를 따라 길을 나서보자. 아무리 AI가 인간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세월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자연이 아니고 진정한 힐링을 얻을 수 없다. 금정산성이 가지는 수많은 역할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사람을 보듬어 주는 힐링 장소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오염을 흡수하여 정화 시켜주는 것만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세상살이하다가 생기는 마음의 생채기를 할머님의 약손같이 치유해 주는 소도(蘇塗) 같은 곳이다.


부산을 가장 부산답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산이 바로 금정산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온갖 공해를 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다시 청정한 공기를 내보내어 그나마 우리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천년 공기청정기 역할을 해준다. 세계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못지않은 위용과 소용을 두루 갖춘 산이다. 


부산의 등뼈를 이루는 주산이요, 우리가 슬프거나 기쁠 때 어느 때 찾아와도 반겨주며 위안과 푸근함으로 안아주는 ‘엄마 산’이다. 울창한 수풀과 맑은 계곡물은 뭍 산짐승과 날짐승을 키우고 푸르름으로 사람의 눈을 빛나게 하고 마음을 평안케 해준다. 서어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오리나무, 붉나무, 소사나무, 층층나무 등등 산기슭에는 사방으로 울창하게 치마를 두른 듯 나무를 키우고, 널따란 정상부를 산성으로 둘러싸고 마을도 품고 있는 사람 친화적인 산이다. 마치 논병아리가 새끼를 품어주듯 왜적으로부터 민(民)을 보살피려는 나라의 뜻을 받아 실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산성은 그래서 더욱더 민중 친화적인 금정산에서 분리될 수 없는 사지(四肢)와 같은 한 부분이 되었다. 


자, 이제 우리의 어머니 금정산 품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머니 품속이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찾아갈 때는 늘 그렇듯이 발걸음 한결 가볍다. 험악한 바위를 넘고 넘는 악산도 아니고 곳곳에 숨어 있는 늪을 피해 다녀야 할 험산도 아니다. 그냥 언제든지 산과 소통할 준비만 되면 라뽀(Rapport)만 들고 찾아가면 된다. 산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찾아가면 언제든지 출입문을 활짝 열어준다. 

하지만, 어머니 산(山)을 이용만 하면 안 되는 법이다. 어머니 산(山)에게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 산이 심심하지 않도록 소곤소곤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거꾸로 산이 꽃과 나무와 바위와 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속삭임을 들어주면 된다. 즉 상호작용하는 산과의 소통이라는 리액션을 돌려주면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입장객이 된다.


금정산성으로 통하는 걷기 길은 수없이 많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동으로는 청룡동에서 그리고 남으로는 남산동, 구서동, 장전동에서 그리고 서로는 온천장, 사직동 쇠미산에서 북으로는 화명동, 금곡동, 양산 다방리에서 출발할 수 있다. 어디서 출발하든지 크게 이 네 방향이 주로 찾아가는 방향이다. 


우리가 오늘 가게 될 금정산 들꽃 기행도 부산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출발하여 동문, 북문 그리고 범어사를 거쳐 청룡동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걷기 길이다. 양산 다방리에서 출발하여 고당봉을 거쳐 범어사로 내려오는 길도 있고, 화명동 방면에서 출발하여 서문을 거쳐 남문으로 동문으로 내려오는 길도 좋다. 아니면 온천장 금강공원에서 출발하여 케이블카를 위로 쳐다보며 급경사 길을 따라 남문으로 동문으로 북문까지 길을 잡아도 좋다. 어느 길인들 부족한 점이 없다. 


피톤치드 뿜어대는 적송 빼곡한 숲, 도토리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상수리 우거진 숲, 분홍색 달콤한 짙은 꽃향기 넘쳐나는 진달래와 철쭉이 시차를 두고 피는 덤불, 삼나무와 편백이 키 자랑하며 ‘쏴아 쏴아’ 바람을 일으키는 골짜기, 6층까지 아니 8층까지 아이보리 상아색 풍성한 꽃을 피우는 층층나무 숲, 허여무리 영국 신사를 닮은 서어나무 군락, 꿈틀꿈틀 용트림하며 하늘로 승천하려는 등나무 군락, 수채화를 그린 듯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산벚나무가 점점이 박혀 있는 산록, 빈틈없이 빼곡히 붙어 철통방어 태세를 이룬 소사나무 군락, 붉게 타오르는 가을철 붉나무 숲, 이 모든 초목이 금정산의 전부가 아닐진 데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발걸음으로 품앗이하며 금정산과의 대화에 참여할 것인가!


근래에 잘 마련된 금정산 둘레길도 있고, 산불 진압용 넓은 임도도 있고 저절로 사람과 산짐승들의 발길이 낸 좁다란 오솔길도 있다. 산성 이끼 낀 돌벽을 따라 시내 풍광을 즐기며 걷도록 놓인 비좁은 산길도 좋다. 골짜기마다 정상을 향해 거미줄처럼 나 있는 등산로도 좋다. 원래 ‘오솔길’은 ‘오소리 길’의 줄임말이다. 오소리란 짐승은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축 처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자신만의 길을 다닐 때마다 길을 쓸고 다녀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있는 길을 따라 금정산의 들꽃과 나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말없이 나눌 ‘대화’ 속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식물도 피톤치드(phytoncide) 같은 천연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자기를 보호하고, 곤충들도 페로몬을 통해서 뜻을 전하고, 사람도 기(氣)를 통해서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다. 반드시 말로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그런 유의 대화를 들꽃과 나무와 산성의 쌓여있는 돌들과도 나눌 수 있는 대화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산림욕에서 빠지지 않고 챙기는 것이 ‘피톤치드’ 효과인데 오늘의 금정산성 들꽃 기행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의 피톤치드 산림욕을 풍성하게 나누고 싶다.


원래 ‘피톤치드’라는 말은 <식물(phyton)과 죽이다(cide)>의 합성어다. 즉 식물이 자기 보호를 위해 자신이 내뿜는 화학물질을 통해 자기 주위의 해로운 미생물들을 모두 죽이는 물질이다. 꿀벌들이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 피톤치드를 긁어모아 놓은 것이 ‘프로폴리스’라는 물질로 건강에 매우 좋다고 요즘 한창 대대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설명일 뿐이고 금정산성을 따라 걸어가는 오늘의 들꽃 기행에서는 ‘걷는 즐거움’과 ‘맑은 공기’ 그리고 ‘눈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린다.


산성 들레 길에서 만나는 장대(將臺)마다 전쟁을 호령하던 장수가 위엄있게 서서 긴 칼을 휘두르며 용감을 독려하던 우렁찬 그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아직도 쟁쟁한 바람이 되어 깊은 갈증을 풀어준다. 동으로는 해운대의 휘황찬란한 발전된 위용으로 가슴 뿌듯하게 하고, 서로는 장장 525.15km를 달려온 낙동강이 바다와 마주하는 장엄한 장면이 눈을 호강시켜 주는 경치를 그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약산의 진달래 못지않은 연한 분홍빛 진달래가 청춘의 봄처럼 몰래 피고, 연이어 짙은 분홍의 수달래가 풍성한 중년의 꽃으로 핀다. 그러면 이제 봄이 본격 시작한다. 곧이어 풍성하고 화려한 하얀 층층나무꽃이 봄이 깊어진다고 뻐꾸기를 불러내고, 연둣빛 도토리나무 여섯 형제들이 주욱 주욱 긴 꽃을 늘어뜨리면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됨을 알린다. 어디를 가나 별처럼 떨어져 찾는 이 모두에게 꽃길을 펼쳐 주는 때죽나무는 여름이 깊어 짐을 알려준다.


노랑 원색의 물감 같은 원추리꽃이 늦여름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곧 가을이 온다. 음력 구월에 꺾어서 약재로 쓴다고 붙여진 들꽃 ‘구절초’가 하얗게 또는 분홍으로 가을을 마무리하는 산성 걷기 길은 모든 찾는 이들에게 꽃길을 걷게 한다. 가는 곳마다 이미 꽃길이 우리를 위해 예비 되어 있다.


산성 막걸리 누룩 냄새가 아니라도 이 장엄한 파노라마 같은 풍광에 이미 취해버린 우리는 오이풀 보라색 꽃처럼 짙은 빛으로 물이 들어버린 발길로 산성 걷기 길과 작별하고 다시 다사다난한 세상 속으로 내려온다. 나도 모르게 또 찾아올 길이기에 아쉬움을 모른 채 들꽃과의 대화를 차곡차곡 간직한 채 내려오는 발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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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1-05 0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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