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조(본지 총괄이사)“사고 한 번이면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
건설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경기 침체로 상반기 실제 공사액이 18.6% 급감하고, 대형 건설사에서 2,835명이 줄어든 상황에서 처벌 중심의 안전 규제는 산업을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생존의 공포’가 안전을 밀어낸다는 역설이다.
공공사업 퇴출·과징금·등록 말소 같은 강한 규제가 이어지자, 기업들은 공사 축소와 비용 절감에 몰리고 있다. 그 결과 서류 중심의 안전 조직은 커지는데, 정작 현장 인력과 설비 같은 ‘진짜 안전’은 비어 간다.
더욱이 경기 지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떨어진 시점에 규제를 강화한 것은 산업의 체력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다.
안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산업 기반을 흔드는 실책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필요한 방향은 분명하다. 처벌이 아닌 예방과 지원 중심으로 정책의 무게를 옮겨야 한다.
첫째, 안전 비용이 원가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공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안전 투자 비용이 공사 원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원가 절감 경쟁에 몰린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건설 원가 대비 안전비 비중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국토교통부 통계). 건설사들이 자율적으로 안전에 투자하려면 적정 이윤이 보장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사고를 줄인 기업에는 세제·입찰 가점 등 실질적 보상이 필요하다.
과징금·퇴출 같은 ‘벌칙’만 있고, 안전을 잘한 기업이 받을 ‘보상’이 없다면 지속적 개선이 어렵다.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는 우수 안전 기업에 입찰 가점을 제공해 사고율을 평균 12~14% 낮춘 성과를 냈다(미 노동부 자료). 한국도 세제 혜택, 공공사업 가점 확대 등 실질적 유인책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AI·센서 기반 스마트 안전 기술 도입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장 인력 감소 상황에서 기술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AI 영상 인식, IoT 센서 기반 추락·충돌 감지 기술은 사고 가능성을 30~50% 줄인 것으로 보고됐다(국토안전관리원). 정부가 기술 도입 비용을 보조하거나 시범 현장을 확대하면, 안전 수준은 물론 생산성까지 높아질 수 있다.
안전을 다루는 정책은 엄중해야 하지만, 그 엄중함이 산업의 숨통을 끊어서는 안 된다.
지금 건설업계는 한 발만 헛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좁은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처벌이라는 채찍만 휘두르는 방식으로는 이 다리를 끝까지 건널 수 없다.
정책은 때로 방향을 틀 줄 알아야 한다.
“예방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오래된 말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안전과 산업이 공존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다. 그래야 비로소 안전도, 산업도 살아남는다.
정책이 산업을 주저앉히면 안전도 설 자리가 없다. “예방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오래된 말이 지금의 건설 현장에 유난히 묵직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