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훈 칼럼니스트
홍철훈 칼럼니스트예로부터 “바다를 제패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라 하였다. 영국을 일컬어 흔히 쓰였으나 실은 스페인이 먼저였다. 거기에는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덕이 크다. 여기저기 무시당했던 콜럼버스의 인도 신항로 개척을 지원해 아메리카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서 16세기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찍이 ‘선원 양성’에 앞장섰던 포르투갈도 한몫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당대 최강의 해양국이었다. 그래 새로 발견될 ‘새 땅 나눠 먹기’를 위해 교황을 내세워 은밀히 세계 바다를 양분(兩分)하였다(토르데시야스 조약, 1494). 그러니까 아프리카 서쪽 카보베르데(Cabo Verde)에서 약 2000km 더 떨어진 지점의 경도선을 기점으로 동쪽은 포르투갈, 서쪽은 스페인이 차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 결과, 초기 아메리카대륙은 모두 스페인이 가져갔고 1500년에 발견된 브라질만 이 경계선에 걸려 포르투갈 식민지가 되어 지금도 유일하게 아메리카대륙에서 포르투갈어를 쓰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실로 우스운 일이다. 그뿐인가, 아시아에 제일 먼저 발 들인 나라가 포르투갈이었던 것도 이 조약이 근거가 되었다고 하니 그저 아연할 뿐이다.
이들 판도를 깨고 16세기 중반 들어 서서히 해양대국을 꿈꾸는 나라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영국이었다. 그녀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거라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스페인의 무적함대(아르마다, Armada)를 ‘카디스(Cadiz)해전(1587)’과 ‘칼레(Calais)해전(1588)’에서 무너뜨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후 약 1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스페인을 누리고 바다의 새 지배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17~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많은 식민지를 개척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주도권을 뺏겼으나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를 중심으로 ‘영연방(Commonwealth)’을 결성해 여전히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엔 미국으로 가보자.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 해양대국으로 올라선 건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901~1909) 재임부터일 것이다. 그는 ‘해군력이 세계 패권의 핵심’이 될 거라 보고 ‘Two-ocean navy(兩大洋 해군)’ 개념을 내세워 파나마 운하를 건설해 태평양ㆍ대서양 양면 함대를 구축했고, 소위 ‘백색 함대(The Great White Fleet)’를 편성해 약 3년에 걸쳐 세계 바다를 항해시킴으로써 이제 미국이 해양강국이 되었음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뒤이어, 그의 조카사위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933~1945) 대통령은 태평양 전쟁을 통해 일본제국해군을 격파하고 항모 중심의 해군력을 강화하여 전후(戰後)에는 항모 100여 척에 세계 해군력의 약 70% 이상을 차지해 ‘미국해군이 곧 세계 해양질서의 수호자’라는 인식을 굳혔다. 그러니까 美 해양강국 구축에 두 ‘루스벨트 대통령’이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우리에게 더욱 흥미로운 건 일본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시절, 메이지 천황(1867~1912) 이후 이런 세계판도를 읽고 동양 제국(諸國)에서 제일 먼저 나서 대처했다는 점에서다.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나 해군 대신(大臣)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가 영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해군력을 구축했고,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을 연합함대 사령관에 임명해 1905년 ‘쓰시마해전’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전멸시켜 세계 해양강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물론, 태평양 전쟁 이후 패망의 길로 들어섰으나, 가히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그리고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버금가는 당대 정치가들의 시대적 안목(眼目)은 주목할 만하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대 무역 경제 대국이 되고 ‘조선(造船) 강국’으로 우뚝 선 건, 대륙 중국에 기대어 온 ‘운명적 반도(半島)’를 넘어 뒤늦게라도 ‘바다 건너 무역’에 눈 돌린 탓이 클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실로 우리의 국가 대계(大計)가 여기에 있음을 한시라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