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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바다의 프롬나드_美 건국 정신과 Puritans (2)
  • 기사등록 2026-01-06 14:14:18
  • 기사수정 2026-01-20 1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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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훈 칼럼니스트전(前) 호(1)에서는, 美 역사에서 ‘Pilgrim Fathers’라 불리는 모험가들이 美 건국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그들이 ‘모험가’라 불릴만한 건 고작 배 무게 180톤에, 길이 약 30m, 폭이 약 8m로 알려진 작은 화물선(Mayflower)을 타고 영국을 떠나 아직도 뱃길이 불안정했던 영국-美 대륙을 잇는 약 5,000km나 되는 대서양 가을 바다를 건너 66일간 항해한 끝에 마침내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그 남다른 ‘용기(勇氣)’에 있을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Pilgrim(순례자)들이 첫 상륙하고 10년 뒤 다시 신대륙을 향했던 또 다른 청교도(Puritans) 모험가들의 이야기다. 최초 이주자였던 ‘Pilgrim(약 30여 명)이 청교도(Puritans)라도 ‘영국국교회(성공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완전 분리’를 추구했던 이른바 ‘분리주의자(Separatists)’였다면 이번엔, 영국에 남아 ‘국교회’ 내부개혁을 추구하려던 ‘온건파’ 청교도였다. 그러나 찰스 왕(1세)이 즉위(1625)하면서 내부의 정치ㆍ종교 위기가 고조되고 ‘청교도 박해’가 더욱 심해지자 ‘내부개혁’을 포기하고 마침내 신대륙으로 이주를 결행한 것이다. 


그런데 Pilgrim과 달리, 이번엔 ‘대규모 이주(Puritan Great Migration)’였다. 1630년~40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무려 2 만여 명이 이주했다. 이런 ‘대이주’가 가능했던 건, 매사추세츠에 새로 ‘헌장’이 생겨 회사 단위의 큰 규모로 이주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이 마련돼서다. 그러니까 Pilgrim이 ‘개인 이주’였다면, ‘대이주’는 ‘자치 단체 중심의 사회 이전’의 성격을 띠었다. 더구나 이미 대서양 횡단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앞선 ‘Pilgrim’들의 정착과정과 성공ㆍ실패 등, 예컨대, 첫해 약 50% 사망, 식량ㆍ보급 부족, 원주민 협조 등에 관한 문서정보들이 충분히 알려져 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었다. 


주목할 만한 건, Pilgrim이 ‘Mayflower Compact (메이플라워 맹약)’을 만들어 그들의 사상과 생활을 내부 규제했다면, ‘대이주’ 청교도에게는 첫 이주선(1930)에 승선한 약 1천 명에게 선상에서 행한 변호사 ‘존 윈스럽 (John Winthrop, 1588~1649)의 설교’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른바 ‘美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설교’로 남은 “City upon the Hill(산 위의 도시)”이었다. 성경에 인용된 ‘도시(city on a hill)’(마태 5:14)를 들어, “우리는 온 세상의 눈이 지켜보는 ‘산 위의 도시’를 건설할 것이며, 만일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린다면 조롱과 경고의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한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이는 청교도사회의 기초 이념이 되어 Pilgrim의 ‘시민 교육 맹약’과 함께 미국 독립과 건국이념에 초석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상으로 뭉친 탓일까, 그들이 구축한 ‘뉴잉글랜드(New England)’는 ‘난민사회’가 아닌 ‘계획 사회’로 급속히 변모했고, 그야말로, 신앙으로 무장한 ‘공동체의 결속’과 ‘엘리트 권력자의 높은 도덕성 및 자제력’, 동시에 ‘상호감시의 윤리적 공동체’로 발전했다. 그러니까 최초 이주자인 ‘Pilgrim’이 「개인의 양심과 자유 중심사상」으로 오늘날 ‘소(小) 정부 및 지방자치’ 중심의 연방제를 구축하고 ‘종교 자유의 절대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면, ‘대이주 청교도’는 「사회ㆍ규범 중심적」인 ‘도덕적 국가’, ‘법ㆍ질서, 공동체 규율’을 더 중시해 오늘날 ‘도덕적 보수주의’와 ‘사회적 가치를 법으로 구현’하려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유감스러운 건, 저 ‘City upon the Hill’에서 나온 ‘도덕적 사명’이 19세기 들어 크게 세속화되어, ‘서부개척에 섬뜩한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19세 중순, 존 오설리반(John L. O’Sullivan, 1813~1895)이라는 칼럼니스트는 이 주장을 소위 ‘명백한 운명론(Manifest Destiny)’(1845)으로 바꿔, “미국은 신의 섭리로 대륙을 차지할 운명”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애초 청교도 공동체가 ‘도덕적 모범’을 보이자던 이론이, ‘종교적ㆍ역사적 필연성’으로 바뀌어 ‘북미 영토팽창을 위한 사상적 명분’으로 변용된 셈이다. 그야말로 美 역사에 암울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청교도 영향이 ‘도덕적 사명과 권력의 결합’이라는 ‘美 특유의 자기인식’으로 변모된 역사적ㆍ도덕적 한계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해도 “국가 권력은 위(上) 아닌 아래(下)의 시민 계약에서 나온다.”라는 사실상 오늘날 민주주의 근간이 이들의 사상에서 뿌리를 내려 美 정치문화의 시금석이 된 건 분명할 것이다.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

hongch06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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