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은 여전히 통합의 내용보다 시점과 속도에 맞춰져 있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지도를 다시 그리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운영 방식과 지방의 역할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언제 하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4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 인센티브는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시적 재정 지원은 통합을 결정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통합 이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원이 끝난 뒤 늘어날 행정과 재정 부담을 지방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면, 이는 통합이라기보다 책임의 이전에 가깝다. 권한은 중앙에 남겨둔 채 부담만 지방에 넘기는 구조에서 성공한 통합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AI생성 그림(chatGPT 사용)이런 맥락에서 부산·경남이 제시한 단계적 행정통합 로드맵은 주목할 만하다. 속도는 느릴 수 있으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주민투표를 통해 시민 동의를 확보하고, 특별법을 통해 통합 자치단체의 권한과 재정 구조를 명문화한 뒤 통합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은 통합 이후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현실적 접근으로 읽힌다. 재정 분권과 자치권 보장을 전제로 통합을 요구하는 태도 역시 책임 있는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
이상철(본지 편집부국장)그럼에도 일부 정치권에서는 통합 시점을 2028년으로 설정한 것을 두고 통합을 미루거나 사실상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는다. 하지만 행정통합은 선거 일정에 맞춰 서둘러 추진할 사안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통합이 실패할 경우, 그 비용은 정책을 결정한 이들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일수록 신중함은 지연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결국 부산·경남 행정통합의 성패는 지방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재정권과 자치권을 어디까지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는지가 핵심 변수다. 통합을 요구하기 전에, 중앙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권한 없는 통합은 통합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중앙집권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