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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바다의 프롬나드_왜 그들은 그토록 ‘Liberty’를 갈구했나? (4)
  • 기사등록 2026-02-04 09:09:26
  • 기사수정 2026-02-06 03: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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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훈 칼럼니스트 전 호 (1)~(3)에서 오늘날 세계 최강국 ‘미국의 건국과정과 청교도(Puritans)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문학 전공도 아닌 필자가 이를 시도한 까닭이 있다. 이미 수년 전 경제 대국에 진입해 소위 ‘5030 국가*1’에 합류한 것은 물론 ‘한류 문화의 열풍’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대한민국의 그 ‘저력(底力)’이 어디서 나왔나 궁금해서였다. 


다 알듯이, 대한민국은 1960년대 초, 1인당 GNP가 겨우 60여 달러에 불과했다. 해방 후, 자원 소국에, 대다수 국민 무학(無學)에, 더구나 6.25로 전파(全破)된 경제 인프라에서 당연했다. 당시 학교에서 무상(無償) 배급한 ‘강냉이 빵’으로 점심을 때웠던 ‘베이비붐 1세대(1955년생)’로서는 이런 쾌거(快擧)에 경탄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실로 궁금했다. 예감은 ‘교육’이었다. 지난 세기 부모들이 얼마나 ‘자녀 교육’에 열성이었나! 좋은 건 아니지만 ‘사교육(私敎育)’은 또 세계 최고 아니었나! 그 실례(實例)를 찾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다 Mayflower 호의 첫 美 이주자 ‘Pilgrim(순례자)’을 美 역사는 ‘Pilgrim Fathers’라 칭송하는 걸 알게 되었다. 102명 중 고작 30여 명뿐 아니었나! ‘어떻게’ 큰 족적(足跡)을 남겼길래 그런가 궁금해졌다. 그 결과물이 지난 호 (1)~(3)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주목한 건, Pilgrim이 ‘높은 문해력(文解力)’을 지녔고 바다 건넌 ‘모험가’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쾌거’는 ‘교육’에 있었고 동시에 수천 년 ‘대륙 의존성’을 벗고 처음으로 ‘남’으로, 그 ‘바다’로’ 국가진로를 택한 ‘모험성’에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오늘날 ‘경제 대국’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예가 없는 ‘정치적 불안정’, ‘사회규범의 혼란’ 또 ‘부정선거 논란’ 등이 왜 이 땅에선 끊이질 않는 걸까? 여기선 이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Pilgrim은 ‘시민 교육(Citizen Education)’을 중시했다. 또 그 핵심엔 ‘Liberty(자유)’가 있었다. 이건, 우리말에선 같은 말인 ‘Freedom’과는 다르다*2. ‘사회적 계약’을 위약(違約) 시 ‘저항의 정당성’을 부여한 ‘자유’다. 그들은 ‘청교도 억압’에 저항해 고국(영국)을 떠났고, 뒤에는 영국 정부의 폭정(暴政)에 불복해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모두 ‘압정(독재)’으로부터 ‘Liberty’를 얻고자 함이었다. 당시 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사람인 패트릭 헨리(1736~1799)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는 명구(名句)에 잘 드러나 있다. 결국, ‘자유’에의 간절한 소망이 ‘신대륙 이주’로, ‘美 독립운동’으로, 세계 최초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진 셈이다. 실로 ‘Pilgrim의 시민 의식’이 그 ‘저력(底力)’ 아니었겠는가! 



이번엔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 국민은 오늘날 ‘문해력’이 세계 최고다. 당시 Pilgrim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교육’을 드려다 보면, 기실 ‘빈곤 탈출을 위한 생존 교육’에 치중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시험통과’, ‘직업생존’, ‘계층이동’ 등을 위한 ‘수단’이었다. 부끄럽지만 필자도 대학교수 되기에 그런 측면이 컸다. 그런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서도 교육현장에서 ‘시민 교육’은 뒷전이었단 점이다. 오늘날도 그런 것 같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지식인 세계마저도 지식축적은 성취했으나 ‘권력 감시’는 부족했고, ‘경쟁력’은 커졌으나 ‘공공성(公共性)’은 부실했다. 성공 가도에 섰어도 ‘민주제 이해’는 약했고, ‘사회의 순응성’에 몰입돼 ‘저항의 정당성’은 흔히 묻혔다. 심지어 ‘부정선거’의 숱한 논란에도 그 ‘진위(眞僞)’를 심층 취재하는 기자 하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를, “Freedom에 만족하고 Liberty를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 보았다*2. 다 ‘시민 의식의 부재’ 탓일 것이다. 독재는 총칼보다 ‘무관심’에서 온다. 역사가 늘 보여준 순서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1867년, St. Andrews 大에서 행한 J.S. Mill(1806~1873)*3의 명언을 다시 새겨 볼만하다.  


이젠 우리도 ‘가난’에서 벗어났다. 더는 ‘생존 교육’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 ‘시민(市民) 교육’을 강화해 ‘눈 뜬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고 권력자를 감시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오늘날 이 대한민국의 ‘쾌거’는 실로 해방 후 오늘날까지 北과의 이념 대결에서 거둔 ‘자유민주주의의 대첩(大捷)’임은 분명할 것이다. 이는 저 ‘美 청교도의 선(先) 교훈’이 일찍이 예고(豫告)한 바 아니겠는가!  

 

*1 ‘5030 국가’: 인구 5천만이 넘고 1인당 GNP가 3만 불이 넘는 국가. 현재 7개국 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대한민국.  

*부산경제신문(인터넷판) 2025.6.23. “Freedom과 Liberty의 차” 

*3 영국의 사상가로서 ‘자유론(On Liberty)’(1859)의 저자.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  

hongch06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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