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훈 칼럼니스트
홍철훈 칼럼니스트전 호(4)에서, 필자는 오늘날 우리의 정치ㆍ사회적 불안정이 “시민 의식의 부족 탓”이라 지적했고 ‘시민 교육(Citizen Education)’의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이들이 대체 뭐길래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ㆍ사회 현실과 유관한 것일까? 여기선 이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시민 의식’이나 ‘시민 교육’을 다루기 전에 ‘시민(citizen, 市民)’이란 말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 ‘말’은 해방 후부터 쓰여 애초 우리말엔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조선 시대 ‘백성(百姓)’이나 일제(日帝) 때의 ‘신민(臣民)’일 것이다. 다 ‘정치 참여권’이 없었다. 그러나 ‘citizen(시민)’은 애초부터 ‘정치 참여권’이 있었다. 어원은 라틴어 ‘civitas(도시, city)’와 ‘civis(시민)’에서 나와 ‘도시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고, 파생어 civilization(문명)은 ‘시민의 삶’을 뜻했다.
‘시민’의 역사는 길다. 처음 개념화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참여자’(정치학, 기원전 4세기)로 정의했고, 그 후 로마 법(기원전 1세기)에 이르러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 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였다. 그는 저서 ‘통치론(1689)’에서 “시민(국민)과 국가 간의 ‘사회계약’을 정부가 ‘위약(違約)’하면 시민은 정부를 바꿀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였다. 소위 ‘시민(국민) 저항권’을 최초로 제안했다.
그의 ‘사회계약’ 핵심은 둘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가 최고권력은 시민”에게 있고(주권재민, 主權在民), 둘째는 시민이 위임한 정부는 “시민의 권리(생명ㆍ자유ㆍ재산)를 보호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즉 “시민은 국가의 법적 주체이고 권리의 원천이며 국가는 그 계약 상대다.”라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가 ‘시민과 국가와의 계약’을 ‘위약(違約)’ 못 하도록 관리ㆍ감시를 위해 ‘저항권’을 허용한 것이다. 우리에게 덜 익숙한 이 ‘계약’을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무게감은 달라도, ‘집 매매(또는 전세) 계약’과 사실상 의미가 같다. 그래 계약자(정부)가 위약(違約)하면 배상(정권교체)을 요구할 권리(저항권)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크의 사상은 훗날 ‘美 독립선언문(1776)’과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문(1789)’에 반영되었고, 오늘날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대한민국 헌법’(헌법 제1조, 제10조, 제11조, 제12조, 제24조, 제25조, 제37조 등)에도 그 ‘사상’을 담고 있다. 지난 세기, ‘대통령 직선제(주권재민)’를 실현한 저 ‘6.29 선언(1987)’을 얻어낸 ‘시민운동’이야말로 ‘시민 저항권’의 발로였다*1.
그런데, 왜 그런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저항권’이 대한민국에 뿌리를 못 내렸나? 이는 ‘우연’ 아닌 역사적ㆍ정치적 선택의 ‘필연’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번 지난 세기를 돌아보자. 우리는 해방 후, 남북분단, 좌우 이념 대립과 美 군정, 6.25 사변 통에 생존의 위기, 이후 독재적 ‘국가주도의 산업화’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은 “국가를 감시하는 존재”라기보다 “국가에 복종해야 생존한다”라는 논리가 지배했다. 소위 “지금은 먹고사는 게 먼저다”라는 거였다. 그 통에 ‘저항권’은 국가안정에 ‘위험 요소’가 되었고 사실상 ‘국가에 대한 불복종=좌익ㆍ용공’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학교에서 ‘저항권’은 빠지고 ‘충성ㆍ질서ㆍ국가안보’만 중시되고 ‘산업인력과 순응적 국민 양성’으로 일선 교육이 설계된 셈이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건, 그 ‘시민 교육의 부재’가 오늘날 ‘부메랑’이 되어 ‘정치ㆍ사회적 불안정’으로 대한민국에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헌법’엔 살아 있는데 ‘일선 교실’엔 없다 보니 ‘시민 훈련’을 제대로 못 받고, 자신이 국가의 ‘권리 주체’로서 정부의 ‘관리ㆍ감시자’인데도 그저 나라를 정치인에게만 떠맡기고 그 현장을 떠난 꼴이 된 셈이다. 더구나 경제의 풍요로움 속에서 자신을 ‘경제 소비자’로만 인식하고 ‘정치’엔 되레 냉담(무관심)해진 듯싶다. 요컨대, ‘대한민국 건국’에는 성공했으나 ‘시민 교육’은 뒤로 미뤘다가 그 ‘유예된 과제’가 ‘지금의 혼란’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저항’할 줄 모르고 순응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분노’가 앞선다. 저 광화문 ‘분노’에 찬 수많은 군중과 연사들을 보자. 그들이 ‘헌법상 계약 위반’을 내세워 정부를 규탄하는 걸 본 적 있는가? 필자는 못 봤다. 정녕 ‘위약 배상 운동’으로 ‘저항권’을 행사했어야 했다. ‘저항권’의 복원은 곧 ‘시민성’의 복원이다. 이는 ‘폭동의 권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한 최후의 권리’다.
이번 글(1~5)을 쓰면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 ‘자유민주주의 퇴행의 증거’가 아니라 ‘시민 사회로의 이행의 증거’로 믿게 되었다. 서구 선진사회가 ‘시민권 확립’→‘법치 강화’→‘자본주의’→‘대중 경제’로 발전해 왔다면, 우리는 ‘국가주도 산업화’→‘경제성장’→‘법제 이식(移植)’→‘시민 의식의 정착화’ 과정으로 가는 듯해서다. 그래 이제 ‘시민성 구축’만 남은 것 같다. ‘시민’이 눈떠야 ‘정치’가 산다. ‘나라’가 산다. 다행인 건, 남북이념전쟁은 겉보기엔 ‘아직’이지만, ‘경제전쟁이 北의 완패’란 점에서 실로 ‘자유민주주의의 대첩(大捷)’인 걸 국민 대다수가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제 ‘헌법에 충실한 시민 양성’을 위해 그 ‘유예했던 교육(시민 교육)’을 시작하자. 일찍이 저 ‘Pilgrim Fathers’가 그랬던 것처럼.
*1 부산경제신문(인터넷판) 2025.6.23. “Freedom과 Liberty의 차”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