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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하 안토니오’ 몬시뇰 부산 명예시민 되다. - 52년간 빈민구휼, 교육사업 등에 헌신...
  • 기사등록 2011-06-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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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식 부산시장이 지난 24일 시청 국제의전실에서 독일인 ‘하 안토니오’ 몬시뇰(89세, 가톨릭 명예 고위성직자 칭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 했다.

이날 허 시장은 52년간 빈민구휼사업과 교육사업 등을 통해 부산 시민생활 개선에 기여한 공적에 대해 “독일정부와 신부님께서 어렵고 힘든 시절 도와주신데 대해 조그마한 성의를 표합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는데 독일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하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하 안토니오’ 몬시뇰과 환담을 나눴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명예시민증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에 헌신해 온 외국인을 발굴해서 수여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밝히며, ‘보다 크고 보다 강한 글로벌 부산’의 따뜻한 위상을 제고 했다.
 
믿음하나로 이국만리 타국에서 봉사활동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하 안토니오’ 몬시뇰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해, 소련(유고슬라비아)에서 ‘1945~’48년 까지 3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이 후 독일 패망으로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국 해 딜링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베르팅겐 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58년 한국에 입국 했다.

1959년 남구 감만동 동항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래 부산 적기(현 남구 우암동 일대)에서 6.25 전쟁으로 피폐해져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주와 질병 치료에 헌신하며 젊음을 바쳤다. 또한 몬시뇰의 사제관에 고아 7명을 데려다 함께 기거하며 살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 행려자와 거동이 불편한 걸인들을 모아 돌보는 복지시설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집’의 전신인 ‘사랑의 집’을 1964년 건립해 사회적 약자들의 안식처를 마련했다.

처음 독일에서 편물기계 몇 대를 보내 와 60여명으로 시작한 기술학원이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1965년 3월 ‘한독여자실업학교’로 개교, 꿈 많은 청소년들에게 기술과 기능을 배우고 익혀서 사회에 진출해 자립할 수 있는 구심체가 됐다.

한편 비워져 있던 옛 한독여자실업학교 건물을 교회 조산원으로 만들어 1977년 2월~1992년 2월까지 약 2만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의 신생아 출산을 도왔으며 1980년부터 ‘어린이날’에 그 해 태어난 아기와 어머니를 초대해 ‘어린이 대잔치’를 열어 주는 등 신생아 및 어린이들에게도 배려와 관심을 가졌다. 특히 ‘하 안토니오’ 몬시뇰의 어머니께서는 외아들인 몬시뇰을 한국으로 보낸 후 1964년 모든 재산을 처분해 ‘사랑의 집’ 건립비로 기부하고, 정작 당신께선 독일의 시립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998년 남구청 명예구민 제1호로 선정된 그는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가운데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명예 고위성직자 ‘몬시뇰’에 임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동안 ‘하 안토니오’ 몬시뇰은 포르투갈 파티마에서의 ‘기적의 성모님 발현 메시지’ 1917년 5월 13일~10월 13일까지 매달 13일 “소련 공산당이 창당 된다. 하지만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치면 소련 공산당이 무너지고 죄인들의 회개가 있을 것이다”를 바탕으로 1964년 ‘푸른 군대 한국본부를 창설’ 했다.

‘푸른 군대’는 ‘붉은 군대’(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각 교구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후 소련 공산당 붕괴로 개칭한 ‘(사)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본부장으로 현재 재직 중이다. 그리고 2009년 1월 한독여자실업학교를 모태로 ‘부산문화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해 미래의 블루오션인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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