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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바다의 타임라인_1,200년 전 ‘장보고의 Great Legacy’(3)
  • 기사등록 2026-04-13 15:48:34
  • 기사수정 2026-04-13 16: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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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훈 칼럼니스트필자는 전(前)편에서, 장보고를 ‘신라의 역신(逆臣)’이 아니라 노예 신라인을 구한 ‘성인’으로, 해적을 소탕한 ‘바다 전략가ㆍ제독’으로, 동북아 해상(海商) 실크로드를 구축한 ‘실업가’로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실로 장보고의 위대함은 1,200년 전 한반도 최초로 바다를 ‘개방경계의 패러다임’으로 바꾼 ‘혁명가’였다는 점이다. 이제 9세기 그가 초기화한 ‘해상 프로토콜(protocol)’이 어떻게 ‘동양 해양사의 거대한 밑그림’으로 진화했는지 살펴보자.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바다 원정의 정점(頂點)은 명나라(영락제) 초, ‘정화(鄭和)의 해상 대원정(1405~1433)’이다. 약 30년간 7차 항해 동안 연인원 약 14만 명에, 참가 함선 매회 240~300여 척으로 명나라-동남아제국-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에까지 총 항정(航程) 약 180,000km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대항정(大航程)’ 설계도의 ‘전략적 원형’이 실은 500년 전 이미 장보고가 구축한 ‘거대해상 망’이었다. 실로 놀랄만한 이 논거(論據)를 추적해보자.

 

먼저 꺼내볼 건, 최근 확인된 유물들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발행한 ‘어음(魚音)’이 ‘글로벌 신용화폐’가 되어 동남아제국과 인도양을 넘어 아라비아까지 오갔으리란 유력한 증거로서다. 그 하나는, 1998년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출토된 소위 ‘9세기 해상무역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검은 모래 난파선(Belitung shipwreck)’이다. 여기서 발견된 6만여 점의 당(唐) 도자기(長沙窯)엔 제작연도가 ‘826년’이라 새겨져 장보고의 활동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장보고의 거점(신라소)이었던 양저우(楊州)(법화원 위치)에서 출토된 9세기 ‘아랍제 유리그릇’과 ‘신라유물’도 장보고의 글로벌 무역을 명증(明證)한다. 동시에, ‘신라소’나 ‘법화원’이 당시 다국적 상인들의 ‘무역 비즈니스 센터’였다는 방증도 된다.

 

또 사료로서는, ‘신라의 융성과 신라에 정착한 아랍 상인의 생활상’이 기록된 9세기 아랍인 ‘이븐 코르다드베(Ibn Khordadbeh, 820/825~913)’*1의 저서다. 이들로 사실상 동남아ㆍ아라비아까지 ‘장보고의 해상 네트워크’가 구축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장보고는 이미 1,200년 전, 거대한 ‘해상 공급망(Supply Chain)’을 장악한 그야말로 ‘글로벌 해상왕(海商王)’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정화의 ‘대항로(大航路)’를 다시 보면 장보고가 ‘초기화’했던 ‘글로벌 해상 망’과 놀랄 만큼 일치한다는 것이다.*2

 

이제 조금 더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자. 장보고의 ‘해상 실크로드’가 송ㆍ원의 거대해상 톱니바퀴로 이어져 ‘정화의 대원정’과 다시 맞물려서다. 먼저 송대(宋代)를 보자. 흥미로운 건, ‘육지 중심의 국가체제’였던 당이 멸망하고 건국한 송(宋)에서 ‘해상(海商)’의 물꼬가 트인 점이다. 비로소 ‘바다의 눈’을 떴음이다. 그러니까 장보고 사후 120년 뒤 송나라가 장보고의 ‘신라소(또는 신라방)’을 본떠 광저우(廣州)에 ‘시박사(市舶司)’(971)를 설치했다. 주목할 건, 장보고는 무역체계가 ‘민간 관리’였는데 송은 ‘국가 관리’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취안저우(泉州), 낭보(明州) 등 점차 그 수를 10여 곳으로 늘렸는데, 그 중 ‘취안저우’는 마르코 폴로가 “세계 제1의 항구”라 극찬했다 하니 단기간에 급성장한 것이다. 놀라운 건, 그 해상교역이 송(宋) 국가 재정의 20~50%까지 점했단 점이다. 국가가 ‘바다에 뛰어드니’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실로 ‘바다’를 보는 국가적 ‘체제변화(Regime Change)’의 중요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마치 6.25로 전파(全破)된 강토 위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바다로 눈을 돌려’ 역점을 둔 ‘원양어업’이 1950~60년대 GNP의 약 10%를 끌어왔던 점을 상기케 한다.


AI 이미지(제미나이 생성)한편 송의 선박 제조기술은 더욱 발달해 척당 1,000명까지 승선했고 세계 최초로 ‘수밀격벽(Water-tight Bulkhead)’ 기술까지 실용화했다. 소위 ‘칸막이 기술’로서 선저(船底) 구멍이 나도 물이 다른 칸으로 못 가게 막는 기술이다. 또 11세기 말부터 ‘나침반’이 도입돼 대양 항해도 가능해져 교역국이 무려 50여 개국에 달했다. 원(元)나라는 더 놀랍다. 애초 ‘육상기마군단’뿐이었던 원은 송으로부터 각종 조선(造船), 선박 운항, 해상정보 등을 전수(傳受)해, 일본 침공(1274, 1281) 실패 이후, 동남아 정벌에 나서 대규모 함대(1000척 이상)를 베트남(대월)(1282~1288), 인도네시아(자바)(1292~1293)에 파견해 사실상 속국화해 해상패권국을 과시했다. 

 

이런 송ㆍ원대의 조선업ㆍ거대해상 발전을 토대로 원을 무너뜨린 신(新) 제국 명초 엘리트들이 사실상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明 중심의 신(新) ‘해양 조공질서’ 구축을 목표로 저 ‘정화의 대항정’을 기획했을 거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9세기 장보고가 청해진에 ‘초기화’했던 ‘해상(海商) 시스템’은 11세기 송(宋)에 계승돼 국가 재정의 반을 점하는 거대 산업으로 변모했고 ‘나침판’으로 인도양 항로(航路)의 문을 열었으며, 이를 전수한 원이 대함대로 동남아시아의 물길마저 열어 마침내 명나라 ‘정화(鄭和)’가 아프리카까지 닿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장보고가 청해진에 박은 ‘말뚝’이 이 장대한 동양사적 ‘해양 굴기(倔起)’의 이정표가 된 셈이다.

 

실로 애석한 건, 이 ‘거대해상 연속 드라마’의 각본을 ‘신라ㆍ고려ㆍ조선’이 아닌 중국이 쓴 점이다. ‘장보고의 바다 혁명’이 신라에서 죽어 중국에서 되살아난 꼴이 되었다. 막말로 ‘죽 쒀 개 준’ 셈이다. ‘바다 천시’의 국시(國是) 탓이었다. 하물며 신라 왕실의 혼인 간계(奸計)로 이 ‘위대한 인물’이 급서(急逝)했으니 그 또한 애석한 일이다.


이제 바다는 ‘글로벌 개방경계’가 되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숨은 보고(寶庫)다. ‘바다 천시 시각’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죄악’이다. ‘육지의 눈’보다 ‘바다의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장보고가 1,200년을 넘어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그가 청해진에 세웠던 ‘돛대(Mast)’는 이제 부산항의 ‘거대한 크레인’이 되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장보고가 실패했던 ‘해양혁명’을 완성하는 것, 그게 오늘날 부산이 짊어져야 할 ‘위대한 숙명’이 아닐까? 그가 1,200년을 돌아 건넨 이 위대한 유산(Great Legacy)을 부산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다시 세계로 쏘아 올리자! 더욱이 신라는 청해진을 버렸지만, 지금 대한민국(해양수산부)은 부산에 와 앞장섰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거친 파도의 멀미’를 이겨내고 바다로 나가자. 장보고가 청해진에 심은 ‘해양의 꿈’을 우리 부산 앞바다에서 화려하게 꽃피워보자.  <3부작 끝>


*1이븐 코르다드베(Ibn Khordadbeh, 820/825~913): ‘제(諸)도로 및 왕국 책(Book of Roads and Kingdoms, 846)’를 쓴 저자로, 바그다드(아바스 왕조)의 우편ㆍ정보국 장관이었다. 여행자들의 목격담을 기술한 것으로, 융성했던 신라의 생활상과 아랍 상인의 신라정착에 대한 기록이 있어 아랍과의 상호무역이 수행됐음을 실증한다. 

*2필자 주(注): 9세기 중국 문헌 기록이나 항해 지도에는 서해와 동남아 해역 곳곳에 ‘신라초(新羅礁)’ 관련 지명이 있어 ‘장보고 항로’를 암시하고, ‘검은 모래 난파선’ 발견지점도 장보고 항로와 일치했다. 다만, 장보고 당시는 오로지 ‘천문(태양, 북극성)’과 ‘계절풍’이 대양 항해에 기본지식이었으므로, 아라비아와의 바다 무역 직항로보다는 육ㆍ해상무역 네트워크로 수행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 전공)

hongch06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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