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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수와 진보의 이정표 - 탈 근본주의 및 극단주의, 실사구시로 -
  • 기사등록 2008-0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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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측 입장에서 보면 지난 87년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을 때 권력을 도둑맞았다고 한다면 2007년 대선은 대권을 헌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 보수 세력은 사상 유래없는 530만 표라는 압도적인 차로 정권을 이양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서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제4막의 역사가 오르게 된 것이다. 제1막은 건국 시기인 1948년 체제, 제2막은 산업화 시기인 1963년 체제, 제3막은 민주화 시기인 1987년 체제, 연이어 제4막인 선진화 시기(경제 살리기로 표현)가 2008년 체제로 대장정에 들어 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표출된 이데오로기 현상을 보면 한국의 보수는 낡은 보수를 버리고 실용적 보수를 선택함으로서 새로운 정치적 프레임 속에 표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화성하는 절충주의와 포퓰리즘의 성향을 노출했다.
절충주의 포퓰리즘 실용주의를 통해 신보수는 민주대 반민주 대결구도가 사라진 포스트 민주화, 세계화 시대에 분출된 사회적 불만을 표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완행세력과 신자유주의 급행세력 간의 쟁투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국가적 대안도 접해보지 못하고 완행세력의 갈 지자 걸음에 염증을 느껴왔던 대중으로서는 급행세력의 진취적 신자유주의화 약속을 믿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10년간 민주화의 환상에 도취하여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노무현정부의 참여 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경제적 민주주의는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유주의하의 입헌적 대의 민주주의 하고는 대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민주주의 완성을 위하여 선거공영제 도입 등 중요한 정치개혁을 단행하고서도 한국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고 끊임없는 불만을 토로함으로써 자중지란을 부추긴 꼴이다. 참여 민주주의는 선진화에 필요한 대의 민주주의를 저버렸으며 대중은 탈법과 부도덕을 인정하면서도 신보수세력을 선택했다.

그러나 성장 제일주의적인 신자유주의는 분명 분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신보수를 지지해 준 서민층, 노조, 젊은 세대 소위 포퓰리스트 세력의 이탈과 반발을 야기할 수 있는데, 실적에 의한 정당성(Legitimacy by Performance)으로 집권한 실용적 보수는 약속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바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의 취약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웃 일본 메이지유신의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같이 근대화 슬로건으로서 한국적 선진화란 미・영 같은 중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사회 과학적인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소모적 이분법을 거둬내고 지난 5년간의 양극화 심화형, 저성장을 분배 개선형, 고성장으로 바꾸어 내는 것이 진정한 실용주의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 같은 통합, 전환, 실용주의는 20세기의 낡은 이념 잣대로는 해석할 수 없으며, 이명박 당선자의 색깔이 우파인 것은 분명하나 수구적인 이전 우파와는 선진화된 이념으로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것이 진보라는 사전적 해석이라면 현재 대한민국의 진보는 좌파가 아니라 분명 우파이다.

좌파 진영이 거듭남으로써 생산적 정책 경쟁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이제 지난 대선을 계기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해서는 말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또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대안적 가치의 창출과 그를 위한 실천에 나서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을 진보라고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본격적으로 대결하는 새로운 진보의 도전이 바야흐로 시작됐으며, 이제부터라도 민주, 개혁, 평화, 진보 세력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물러날 지도자를 계속 탓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선택 가능한 정당조직을 추서려야 한다. 대중들은 집이 낡았다고 그 집을 대책없이 떠나지는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면 우선 남의 소유 자재라도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좋은 집이 주어 진다면 낡은 집은 버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진보세력은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실패했다.

신당이든 민노당이든 지금 당장 실패한 조직은 버려야 한다. 이미 실패한 조직으로 총선이 목전이라 조직을 버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썩은 고기를 생선시장에 내 놓고 팔 심산인 것 같다. 그렇게 철저히 몰락한 것 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뼈를 깎는 반성의 토대 위에서 벽돌을 한장 한장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버리고 실사구시로 단계적 성취 노선을 취해야 한다. 5년 10년이 갈지도 모르는 신보수 기득권 세력의 행보에 대해 독수리와 같은 천리안으로 참을성을 갖고 선진화 진입을 위한 지속 가능한 사회건설이라는 의제를 놓고 계속 노력하는 것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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