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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안을 마시는 시대, '물'에 대한 신뢰를 묻다
  • 기사등록 2026-04-04 10:32:46
  • 기사수정 2026-04-04 10: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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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물이 이토록 불안의 대상이 되었을까.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물은 ‘고르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른 새벽 정갈하게 길어 올린 정한수 한 그릇에는 지극한 정성을 담았고,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에는 자연의 치유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 시절 물은 곧 생명이었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를 넘어 자연과 교감하는 의식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다르다. 그들에게 물은 자신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도구다. 신사 입구에서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행위나, 온천에 몸을 담그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습관은 물을 철저히 ‘질서’와 ‘정결’의 도구로 다듬어온 결과다. 일본인에게 물은 자연이되, 동시에 엄격하게 관리된 문화적 의식이다. 


유럽의 시각은 훨씬 냉정하고 실용적이다. 그들에게 물은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다. 고대 로마의 수도교에서 시작된 물 관리 기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대부분의 도시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유럽인에게 물은 국가가 보증하는 신뢰 가능한 공공재이자, 과학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불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정수기를 거치지 않은 물은 왠지 찜찜하고, 유명 브랜드의 생수 라벨을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한다. 기술적 ‘깨끗함’은 얻었을지 모르나, 심리적 ‘확신’은 잃어버린 셈이다. 자연 그대로의 물은 우리 곁에서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가공된 안전’이 채우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물이 과거보다 나빠진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더 불안해진 것인가. 조상들은 물을 믿었고, 일본은 물로 자신을 다스렸으며, 유럽은 물을 통제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물을 의심한다. 이 뿌리 깊은 의심은 단순히 정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사회적 신뢰 자본의 붕괴를 보여주는 단면일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진정 '좋은 물'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나치게 가공되지 않았으며, 막힘없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무엇보다 우리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물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물 한 잔의 기준조차 흔들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촘촘한 필터나 고가의 생수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물에 대한, 그리고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상철(본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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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4-04 10: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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