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제신문 편집국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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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7장. 독립인가, 광복인가
⑤ 해방·광복·독립은 왜 혼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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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해방’과 ‘광복’, 그리고 ‘독립’이라는 말을 거의 같은 의미처럼 사용해 왔다. 학교에서는 독립운동을 배웠고, 8월 15일은 광복절로 기념하며, 당시 사람들의 환호는 흔히 “해방의 기쁨”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이 세 단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사용한다. 일상 속에서는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세 단어 모두 일본 식민지 지배가 끝났다는 역사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세 단어는 결코 완전히 같은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해방과 광복, 독립은 각각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며, 그 안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과 권력의 의도, 그리고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용어들이 뒤섞여 사용되는 현상은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 근현대사를 어떤 구조 속에서 이해하고 기억해 왔는가를 보여 주는 중요한 흔적이다.
자주 강조한 말이지만 역사는 단순히 사건을 외우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언어로 자신의 시대를 설명하려 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해방”이라는 말 속에서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꼈고, 누군가는 “독립”이라는 말속에서 국가 주권의 회복을 떠올렸으며, 또 누군가는 “광복”이라는 말속에서 잃어버린 역사와 존엄이 다시 살아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역사에세이는 단순한 개념 정리가 아니라, 그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얼굴을 복원하려 해야 한다.
먼저 해방이라는 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解放)은 문자 그대로 속박이나 억압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국가라는 개념보다 인간의 감각이 먼저 들어 있다.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도 해방이고, 억압적 권력에서 벗어나는 것도 해방이다. 그래서 1945년 8월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감정은 사실 ‘독립’보다는 ‘해방’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일본 제국은 단순한 외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이었다.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고, 일본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전쟁 동원을 위해 삶 전체가 통제되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강제로 전쟁터나 공장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은 단순히 국권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짓눌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945년 8월 15일 사람들의 감정은 무엇보다 “억압에서 풀려났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거리에서는 “해방됐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매우 인간적인 언어였다. 정치 이론이나 국제법 이전에, 더 이상 억압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감정의 언어였다. 그러나 해방이라는 말에는 동시에 한계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해방은 어디까지나 “억압 상태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강조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방은 식민 상태의 종료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후 어떤 국가 질서가 회복되었는가까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또 독립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독립(獨立)은 “홀로 선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국가가 외세의 간섭 없이 주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독립은 기본적으로 국가 중심의 개념이다. 여기에는 외교권과 군사권, 입법권과 같은 근대적 주권국가의 개념이 들어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한국 근대사 속에서 독립이라는 말 역시 처음부터 민족 해방의 언어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까지 더 익숙했던 표현은 오히려 ‘자주’였다. 자주는 유교적 정치 윤리 속에서 형성된 개념으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도덕적 자율성을 의미했다. 반면 근대 국제정치가 말하는 독립 국가의 개념은 서구 국제법 체계 속에서 뒤늦게 조선에 들어왔다. 문제는 조선이 그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착시킬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19세기 말 조선은 청과 일본, 러시아와 서구 열강 사이에서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독립”이라는 언어는 갑오개혁과 시모노세키조약 등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독립이라는 말은 조선의 완전한 주권 보장을 위한 언어라기보다, 청의 종주권을 제거하려는 일본 외교 전략 속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독립은 처음부터 순수한 민족 해방의 언어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식민지 체제가 시작되면서 독립은 단순한 외교 용어가 아니라 민족 전체의 생존 목표로 변하게 된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도,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도, 만주와 연해주의 무장투쟁도 모두 빼앗긴 국가 주권을 다시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독립이라는 말속에는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등장한다. 이미 나라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벌어진 항일투쟁을 과연 단순히 ‘독립’이라는 말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광복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이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광복(光復)은 문자 그대로 “빛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단순한 정치 권력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이었고, 민족 공동체의 존엄이었으며, 식민지 시대 속에서 짓밟힌 인간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광복은 독립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독립이 외세 지배로부터 벗어나 국가 주권을 회복하는 정치적 개념이라면, 광복은 그 정치적 회복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존엄까지 함께 복원하려는 개념이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은 단순히 “독립”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날은 단순히 국가 체제가 바뀐 날이 아니라,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인간의 존엄과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후 남북한이 이 세 개념을 서로 다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일관되게 “해방”이라는 말을 중심에 두었다. 그들에게 해방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혁명 세력이 제국주의를 타파한 역사적 성취였다. 해방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혁명 권력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핵심 언어가 되었다.
반면 남한은 점차 “독립”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다. 대한민국은 자신을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새롭게 탄생한 독립국가로 설명하고자 했다. 항일투쟁은 독립운동으로 재정의되었고, 독립운동가는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 되었다. 그 결과 광복은 광복절이라는 기념일 속에 제한적으로 남게 되었고, 해방은 점차 감정적 표현처럼 주변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해방과 독립, 광복이라는 세 단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각각 다른 역사 인식과 정치적 구조 속에서 사용된 언어였다. 해방은 억압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었고, 독립은 국가 주권 회복의 정치적 의지를 담고 있었으며, 광복은 잃어버린 역사와 존엄을 다시 되찾으려는 문명사적 기억을 담고 있었다.
독립, 광복, 해방의 의미 그림 이미지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이 세 개념을 충분히 구분하지 않은 채 혼용해 왔다. 물론 언어는 시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개념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역사 자체가 단순화된다는 점이다. 해방만 강조하면 국가 주권 문제를 놓치게 되고, 독립만 강조하면 인간의 존엄과 식민지 경험의 상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또 광복만 강조하면 현실 정치와 국가 구조의 문제를 지나치게 추상화할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개념만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내세우는 일이 아니다. 해방과 독립, 광복이라는 말이 각각 어떠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등장했으며, 당시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무엇을 설명하고 염원했는지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단순히 사건과 연도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해방의 기쁨에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민족이 주인이 되는 독립국가의 탄생을 간절히 꿈꾸었으며, 또 누군가는 광복이라는 말 속에서 빼앗겼던 역사와 민족의 존엄이 다시 살아나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므로 역사 에세이는 단순히 개념을 정리하는 글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인간들이 어떤 언어로 자신의 상처와 희망을 설명하려 했는가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인간과 권력, 기억과 선택의 기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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