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한제국의 멸망과 근대사를 ‘피해자와 외세’라는 하나의 익숙한 프레임 안에서만 바라봐 왔는지도 모릅니다. 본지는 역사 교과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박제된 기억 뒤에 숨겨진 날것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국채보상운동 학술자문교수로 활동해 온 역사학자 허태근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묻지 못했던 대한제국 망국의 진짜 원인과 ‘기억의 정치학’을 총 4부(13장)에 걸쳐 연재(주 3회)합니다. <편집자 주>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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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6장. 을사조약인가, 을사늑약인가
② 명칭은 해석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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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현상인데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주택을 공급할 때 '신도시 개발'이라고 하면 미래를 위한 성장 정책처럼 들린다. 그러나 같은 사업도 '농지 강제수용'이나 '원주민 이주 사업'이라고 표현하면 개발보다 희생과 피해가 먼저 떠오른다. 바뀐 것은 사업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이름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기업이 직원을 줄일 때 '해고' 대신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같은 의료 행위도 '낙태'라고 하면 생명의 문제를 떠올리게 되지만, '임신중지'라고 하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의미가 먼저 강조된다. 환경 정책에서도 '원자력 발전'이라고 하면 안정적인 에너지원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핵발전'이라고 하면 위험성과 방사능 문제가 먼저 연상된다. 같은 현상인데도 어떤 이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고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다. 결국 사건이나 정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명칭이 사람들의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보다 먼저 이름을 통해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단순히 대상을 구별하기 위한 표시가 아니라, 그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미리 제시하는 해석의 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용을 충분히 알기 전부터 이름이 주는 이미지에 영향을 받아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결국 명칭은 사실을 설명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사실을 해석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어떤 대상을 처음 만날 때 그 실체보다 먼저 이름을 접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이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름은 단지 대상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사람의 첫인상을 만들고, 사물의 성격을 규정하며, 사건의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된다.
역사 속 사건도 다르지 않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그 사건의 성격과 의미를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이름은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해석의 틀이 된다. 그래서 역사 속 명칭에는 언제나 그 시대의 가치관과 권력의 시선이 함께 담겨 있다. 결국 명칭은 사실을 설명하는 언어인 동시에 사실을 해석하는 언어이며, 후대 사람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평가하는 방식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같은 행동이라도 '도전'이라고 부르면 용기와 개혁이 떠오르지만, '반란'이라고 부르면 질서를 무너뜨린 폭력이 먼저 떠오른다. 같은 희생도 '순국'이라고 하면 숭고함을 느끼지만, '처형'이라고 하면 죄인의 최후라는 인상을 받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을 모두 확인한 뒤 판단하지 않는다.
먼저 붙여진 이름을 통해 사실을 이해하고, 그 이름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사건을 기억한다. 이름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해석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로 인해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혁명'이라고 부르면 정의로운 변화가 떠오르지만, '반란'이라고 부르면 국가 질서를 뒤흔든 폭력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형성된다. '의병'은 나라를 지킨 애국자가 되지만, 같은 사람도 '폭도'라고 부르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집단으로 기억된다. '광복'과 '해방', '사변'과 '전쟁', '군란'과 '항쟁'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건 자체는 하나일지라도 어떤 이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원인과 책임, 정당성과 평가까지 달라진다.
결국 역사에서 명칭은 사건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다.
명칭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창이며, 기억을 만드는 틀이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가장 먼저 이름을 바꾸려 했고, 후대는 그 이름을 통해 과거를 이해해 왔다. 역사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그 이름을 만들었고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함께 묻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역사는 종종 총칼보다 먼저 언어 속에서 재편된다.
권력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전에 먼저 이름을 바꾸고,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려 한다. 어떤 이름은 폭력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지고, 어떤 이름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된다. 반대로 어떤 이름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눌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이름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교과서 속 역사 용어들은 처음부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적 명칭은 특정 시대의 권력관계와 정치적 환경, 그리고 사회적 가치관 속에서 선택되고 정착된 결과이다. 따라서 역사 속 명칭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하나의 해석 체계이자 사람들의 기억을 조직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 속 명칭은 실제로 우리의 역사 인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이 장에서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 온 여러 사례를 통해, 명칭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과 역사적 평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해석의 틀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국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건 자체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 이름이 어떤 시대적 의도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먼저 1895년 을미년 사건 명칭부터 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사건은 지금도 학계나 교과서에서 ‘을미사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대규모 국가 폭력과 계획적인 왕비를 살해한 사건을 단순하고 우발적인 정치적 사건처럼 보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폭력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을미왜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이름이 달라지면 사건을 바라보는 역사적 의미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을미시해’ 명칭도 마찬가지다. 시해라는 명칭은 우리 내부에서 왕비를 죽인 것이된다. 그러므로 을미 살해가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 『강희자전』에 명시한 개념에 의하면 너무도 명확한 명칭이다. 그래서 필자 역시 그것이 너무도 자명하다고 말한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이를 ‘한일합방’이라고 불렀다. ‘합방’이라는 표현은 두 나라가 서로 합의하여 하나의 국가가 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 과정은 군사력과 외교적 강압 아래 이루어진 식민지 편입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강제병합’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된다. 이름 하나가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명칭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사에서도 권력은 언제나 이름을 바꾸며 기억을 재편해 왔다. 소련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침공’이라 부르지 않고 ‘형제국 지원’이라고 설명하였다. 영국은 식민지 확대를 ‘문명화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고 표현했고, 일본은 만주 침략을 ‘만주사변’이라 불렀다. 침략은 지원이 되고, 점령은 보호가 되며, 식민 지배는 문명 전파로 포장되었다. 권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큼이나 폭력을 어떻게 이름 붙일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동학난’은 ‘동학농민운동’으로, ‘광주사태’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제주폭동’은 ‘제주4·3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칭이 바뀌면서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화하였다. 과거에는 폭동이나 반란으로 이해되던 사건들이 오늘날에는 민중의 저항, 민주주의, 국가 폭력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해석되고 있다.
침략은 어떻게 ‘지원’이 되는가. 그림 이미지
결국 역사 속 명칭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건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는 해석의 언어이다. 어떤 이름은 책임을 흐리기 위해 만들어지고, 어떤 이름은 침묵당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선택된다. 그래서 명칭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역사를 설명할 권리를 가지는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가를 둘러싼 기억의 싸움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과거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건보다 이름을 먼저 기억한다. 이름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다시 역사 인식을 형성한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이름을 통제하려 하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이름을 통해 과거를 다시 해석한다.
명칭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명칭은 곧 해석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한 시대의 정의와 책임, 피해와 가해의 경계까지 바꾸어 놓는다. 역사는 기록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본 연재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향후 단행본 출간을 전제로 일부를 선공개하는 형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