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금정산 고당봉 400회 등정… 4년 넘는 꾸준한 산행의 여정
지난 5월 11일 일요일, 부산 금정산의 최고봉 고당봉(해발 801.5m) 정상에 익숙한 발걸음이 또 한 번 닿았다. 이번이 벌써 400번째. 특별한 기념식도, 팻말도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정상에 서는 마음이 유독 벅찼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김호영 씨(우원장학문화재단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국가 정책을 보좌했고, 이후 흥우건설의 전무로 기업 경영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교육과 문화에 힘을 보태는 재단 이사로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겉보기에 바쁜 인생 속에서 ‘산’은 어울리지 않는 요소 같지만, 사실은 그의 삶의 중심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존재였다.
시작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다짐에서
김 씨가 고당봉을 처음 오른 건 2021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자 휴일이었던 그날, 그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금정산에 올랐다. “아무 계획도 없었고, 기록을 세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는 그였지만, 한 번의 산행이 그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그 후 그는 정기적으로 고당봉에 올랐고, 매번 ‘왜 나는 이 길을 걷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때로는 역사 속 위인들의 삶을 떠올리며, 세종대왕을 왜 성군(聖君)이라 부르는지 되물었다고 한다. “고당봉을 오르는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매번 작은 수행의 길이었어요.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마주보고 내면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울 눈 덮인 고당봉, 여름 장마 속 미끄러운 바위… 산은 매번 같지 않았다
400번의 산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2022년 4월 23일 100회, 2023년 5월 1일 200회, 2024년 6월 6일 300회, 그리고 이번 2025년 5월 11일 400회까지, 매년의 이정표는 고된 계절을 지나온 흔적이기도 하다. 김 씨는 김 씨는 여름 장마철이면 진흙탕이 된 산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어야 했고, 돌 사이로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며 신발이 흠뻑 젖는 일도 잦았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나무계단과 돌계단 위를 조심스럽게 스틱에 의지해 올라야 했다. 한 번은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시야가 흐려져 정상 근처에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산은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이 삶과 같다는 것을 배웠어요. 좋은 날도, 험한 날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걷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기록보다 중요한 건 겸허함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그는 자신의 산행이 ‘기록 도전’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란다. 400회라는 숫자는 그에게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매번 새롭게 마주하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돌아보는 태도다. “많은 분들이 ‘대단하다’고 하시지만, 저는 오히려 산이 저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땀을 흘린 만큼 욕심이 빠지고, 올라간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지금도 김 씨는 혼자 배낭을 메고 금정산 입구에 선다. 특별한 장비 없이, 익숙한 운동화와 작은 물병 하나면 충분하다. 그는 여전히 고당봉에 오르면 마음속으로 묻는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진실과 겸손은 지켜지고 있는가?”
산에서 내려와 다시 삶의 터전으로
김호영 씨에게 고당봉은 단지 ‘높은 곳’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는 ‘깊은 곳’이었다. 그는 오늘도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천천히 걸어올라, 정상에서 바람을 마주한 뒤 다시 일상으로 내려간다. 그의 다음 목표는 따로 없다. 오직 계속 걸어가는 것. “산이 부르면 또 가는 겁니다. 그리고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니까요. 그게 삶이고, 그게 사람 아닐까요?”
이상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