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제신문 편집국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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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7장. 독립인가, 광복인가
② 대한제국은 언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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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날이다. 그러나 그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총성이 온 거리를 뒤덮은 날도 아니었고, 백성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나와 통곡한 날도 아니었다. 일본의 엄중한 통제 아래 궁궐에서는 병합조약이 공포되었고, 사람들은 말보다 침묵으로 그날을 견뎌야 했다. 장터에서는 여느 날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논밭에서는 생업을 이어가는 농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 아래에는 나라를 잃었다는 허망함과 두려움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남의 나라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제까지는 대한제국의 백성이었는데, 오늘부터는 일본 제국의 신민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분노를 터뜨릴 수도 없었고, 슬픔을 마음껏 드러낼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끝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산으로 들어가 의병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벼슬을 버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나라와 운명을 함께하려 했다. 나라의 멸망은 한 장의 조약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새겨졌다.
사실 이러한 절망은 1910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다섯 해 전인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운명이 기울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통해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한다.”라고 절규하였다. 이어 “이천만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라고 외친 그의 탄식은 한 언론인의 분노를 넘어, 나라를 잃어 가던 백성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대의 울음이었다. 그 절규는 을사조약을 향한 통곡이었지만, 동시에 다가올 망국의 운명을 예감한 비통한 예언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대한제국의 멸망을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라는 하나의 날짜로 기억한다.
교과서 역시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병합되면서 국권을 상실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조약문 한 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멸망은 어느 날 갑자기 선언문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권력이 공공성을 잃으며, 공동체보다 사적 이해관계가 앞서기 시작할 때 나라는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국기는 마지막에 내려오지만, 국가는 그보다 먼저 흔들린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면 대한제국은 1910년 어느 하루에 갑자기 사라진 나라가 아니었다.
그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안쪽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외세의 압박은 분명 거세고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외세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권력을 지키려는 욕망, 살아남으려는 두려움, 시대를 읽지 못한 선택, 그리고 국가보다 사적 이해를 앞세운 인간들의 계산이 함께 뒤엉켜 있었다.
역사는 흔히 국가와 국가의 대립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얼굴 속에서 움직인다. 어떤 이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고,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타협했다. 어떤 이는 나라보다 자신의 가문과 재산을 먼저 생각했고, 또 어떤 이는 무너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조약의 날짜와 외교문서를 확인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너져 가는 나라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역사에세이가 해야 할 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래전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복잡한 얼굴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제국의 멸망 역시 선과 악의 단순한 이야기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 역사 안에는 외세의 침략도 있었고, 무능한 권력도 있었으며,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계산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라를 팔아먹은 악인으로만 기억되고, 누군가는 무조건적인 애국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역사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간 인간과 권력의 선택을 기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은 처음부터 무너질 운명을 안고 있었던 나라였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역사는 언제나 희망과 위기가 함께 존재한다. 대한제국 역시 출발부터 쇠락만을 향해 달려간 나라는 아니었다.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기대와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근대 국가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정세의 거센 변화와 내부 권력 구조의 모순 속에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역사를 잠시 되돌아본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었다. 당시 고종은 황제 즉위를 통해 조선이 더 이상 청의 속국이 아니라 자주독립 국가임을 대내외에 선포하려 했다. 국호 역시 단순한 조선이 아니라 ‘대한(大韓)’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단순한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무너져 가는 국제질서 속에서 마지막으로 국가의 자존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출발은 동시에 깊은 모순을 안고 있었다.
겉으로는 근대 국가를 지향했지만, 내부 권력 구조는 여전히 사적 관계와 궁중 권력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개혁은 추진되었지만 일관되지 못했고, 권력은 제도보다 인맥과 충성 구조 속에서 운영되었다. 국가 운영의 중심에는 공공성보다 황실 권력 유지가 우선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고종 친정기 이후 강화된 내무부 중심 권력 구조는 대한제국의 권력을 특정 세력에게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관직은 능력보다 관계와 자금에 의해 움직였고, 겸직 구조는 권력 집중을 심화시켰다. 어떤 사람들에게 국가는 공공의 공간이라기보다 권력을 유지하고 재정을 확보하는 체제에 가까워졌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고종 개인의 탐욕이나 무능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위험하다.
당시 대한제국은 청·일·러시아·미국 등 열강의 각축 속에서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국제질서는 약소국이 살아남기 어려운 방향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었다. 고종 역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우유부단해 보이는 선택들 속에도, 당시 황제로서 느꼈던 공포와 불안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아관파천은 그 대표적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1896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교과서에서는 이를 친러 정책 강화 정도로 간단히 설명하지만, 실제 그 장면 속에는 극도의 공포와 불신이 숨어 있었다. 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고종은 자신 역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놓여 있었다. 왕궁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고, 황제는 자신의 나라 안에서조차 외국 공사관으로 피신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황제가 자기 궁궐보다 외국 공사관에서 더 안전함을 느꼈다는 사실은 이미 국가 권력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한제국은 형식적으로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국가 내부의 주권과 권위는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었다.
명성황후 살해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을미왜변, 곧 명성황후 살해사건을 일본의 야만적 침략 행위로 기억한다. 필자는 이 사건을 ‘을미사변’보다 ‘을미왜변’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것은 단순한 정변이 아니라 일본 세력이 조선 왕궁 깊숙이 침투해 왕비를 살해한 폭력적 침략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은 일본의 명백한 침략 행위였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제국 내부 권력 구조의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외세가 궁궐 깊숙이 들어와 왕비를 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침묵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고, 어떤 이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다. 누군가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라가 흔들릴수록 사람들의 선택은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누구는 저항을, 누구는 타협을, 누구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한 시대의 갈림길 한가운데에 을사오적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흔히 나라를 팔아먹은 절대적 악인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들이 체결에 참여한 을사조약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그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역사에세이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단순히 선과 악의 잣대로 인물을 재단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그들은 정말 처음부터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움직였던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무너져 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들 나름의 생존 논리와 시대 인식을 선택했던 것일까.
이 질문은 그들을 변호하거나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흔들릴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두려움과 권력, 그리고 현실의 논리 앞에서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인지를 들여다보기 위한 질문이다. 나라가 흔들릴 때 사람들의 선택은 서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저항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한다. 어떤 이는 침묵을 선택하고, 어떤 이는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한다.
역사는 바로 그 복잡한 인간의 얼굴을 기록한다.
그러나 인간의 두려움과 계산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권력의 선택과 결합하는 순간,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 결정적 장면이 바로 1905년 을사조약이었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박탈되었고, 나라는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 체제로 편입되었다. 겉으로는 황제가 존재하고 정부도 유지되고 있었지만, 국가의 핵심 주권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이 시기 대한제국은 형식은 남아 있었지만 실질은 점점 비어 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은 1910년에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제국은 이미 1905년에 외교 주권을 잃으면서 크게 무너졌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이전부터 내부 권력 구조와 공공성의 붕괴 속에서 서서히 해체되고 있었다. 나라의 멸망은 단지 외세가 국경을 넘는 순간에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제도만으로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를 지키려는 책임감과 공공성,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최소한의 신뢰 위에서 유지된다. 그러나 권력이 공공성을 잃고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할 때, 국가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대한제국 말기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관직은 거래되었고, 권력은 특정 세력 중심으로 집중되었으며, 재정은 황실과 권력 유지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국가는 점점 민심과 멀어졌다. 외세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결국 일본은 총칼만으로 대한제국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안에서 흔들리고 있던 국가 시스템 위에 최종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을미의병과 정미의병으로 이어진 의병전쟁은 단순한 복고 운동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라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이는 가족을 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갔고,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이 끝날 것을 알면서도 총을 들었다. 역사책 속에서는 ‘의병 수천 명’ 정도로 기록되지만, 실제 그 숫자 안에는 이름 없는 인간들의 눈물과 절망이 숨어 있다.
안중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흔히 그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영웅이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시대 속에서 고뇌했고, 무너져 가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인간이었다. 하얼빈에서 총을 들기까지 그의 내면에는 수많은 갈등과 결심의 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역사에세이는 바로 그런 인간의 흔적을 복원하려 한다.
역사는 단지 결과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두려움과 욕망, 침묵과 선택이 모여 결국 하나의 시대를 만든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언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연도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언제 형식적으로 멸망했는가를 묻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공공성이 언제 무너졌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들이 언제 나라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선택하기 시작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멸망 그림 이미지
나는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히 국가의 흥망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이 무엇을 지키려 했고, 무엇을 포기했으며, 어떤 두려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멸망 역시 단순한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권력, 공포와 욕망, 책임과 침묵이 뒤엉킨 거대한 인간사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얼굴을 복원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우리가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과거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통해,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다시 묻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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