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제신문 편집국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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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7장. 독립인가, 광복인가
④ 미완의 광복이 남긴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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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은 분명 거대한 역사적 전환의 순간이었다. 당시 해방 전후의 신문 보도와 회고들은 그날의 공기를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말없이 번져 나가다가 마침내 큰 물결이 되었다는 식으로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문처럼 들려온 일본의 항복 소식이었지만, 사람들은 곧 그것이 현실임을 알아차렸다. 누군가는 거리로 뛰쳐나왔고, 누군가는 집 안 깊숙이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냈다. 태극기의 모양이 정확한지, 네 괘의 위치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일장기 아래에서 숨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거리에는 환호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일본 제국의 패망을 기뻐했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서로를 끌어안았으며, 또 누군가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식민지 시대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날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눌렸던 이름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고, 빼앗겼던 말과 노래와 기억이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을 다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그날의 감격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낀 것은 아니었다. 35년 동안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서로 달랐던 만큼 해방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달랐다. 감옥에서 풀려난 독립운동가는 조국의 하늘 아래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강제 동원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살아서 고향 땅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해방은 기쁨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상실의 날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고, 누군가는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묵묵히 눈물만 훔쳤다. 같은 광복이었지만 사람마다 기억하는 광복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은 단순히 한 나라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인간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된 날이었고, 잃어버린 이름과 언어, 그리고 민족의 자존을 다시 되찾았다고 믿었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인간의 감격만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 뒤에는 곧바로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는 끝났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거리마다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정치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은 온전히 우리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찾아왔지만, 빼앗긴 주권까지 완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1945년 8월 15일을 곧바로 ‘광복의 완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시의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해석일 수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과 우리 민족이 완전한 자주권을 되찾았다는 것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민족의 의지에 따른 자주적 통일국가의 수립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이러한 간극에 주목할 때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하루에 완결된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빼앗긴 나라와 주권을 온전히 되찾아 가는 역사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광복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역사적 과정으로 바라보면, 그 말에 담긴 본래의 의미도 더욱 분명해진다. 광복은 글자 그대로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어둠에 가려졌던 나라의 빛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광복의 의미는 식민 지배가 끝난 1945년 8월 15일에만 머물 수 없다. 그것은 해방의 기쁨에서 출발하여 자주적인 국가를 세우고, 분단을 극복하며, 민족 공동체의 존엄과 주권을 온전히 회복해 가는 긴 역사적 여정까지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45년의 한반도에는 그 국권 회복을 온전히 담보할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 패망하자마자 한반도는 곧바로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조선 민중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국제정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급속히 제약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 속에서 거리로 뛰쳐나왔지만, 정작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외부 강대국들의 손 안에 있었다. 식민지 지배는 끝났지만, 곧바로 완전한 자주 국가가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서 ‘주권의 유예’라는 모순적 상태가 등장한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주권은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딘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상태에 가까웠다. 남쪽에서는 미군정이, 북쪽에서는 소련 군정이 정치와 행정, 군사 권력을 행사하였다. 조선인은 분명 식민지 백성의 지위에서는 벗어났지만, 자기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완전한 주권 국민은 아직 아니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역사적 상황이었다. 국제법적으로 보더라도 한반도는 식민지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완전한 독립국가로 기능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광복은 선언되었으나 주권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1945년 이후의 한반도는 단순한 해방 공간이 아니라, 해방의 기쁨과 미완의 주권이 뒤엉킨 과도기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곧 사람들의 삶 속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나라를 되찾았다는 기쁨은 컸지만, 앞으로 어떤 국가를 세워야 하는지를 두고 사회는 빠르게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해방은 모두에게 같은 기쁨을 안겨 주었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은 결코 같지 않았다.
역사는 흔히 1945년을 '광복의 해'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속에는 해방의 환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거리에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목소리가 넘쳐났고, 좌우의 이념 대립은 빠르게 격화되었다. 누군가는 사회주의 국가를 꿈꾸었고, 누군가는 자유주의 국가를 원했으며, 또 누군가는 이념보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복잡한 인간들의 꿈 위로 냉전이라는 거대한 국제질서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38선을 경계로 한 분할 점령은 처음에는 임시적 조치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나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냉전 질서가 점차 고착되면서 분단은 단순한 군사적 경계선을 넘어 서로 다른 국가 체제의 출발점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광복은 하나의 공동 목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를 정당화하는 정치 언어로 분절되기 시작했다.
남한은 ‘독립 국가 수립’을 광복의 완성으로 설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자신을 일제 강점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탄생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반면 북한은 ‘조국 해방과 혁명 국가 건설’을 광복의 실현이라고 주장했다. 해방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혁명 세력이 제국주의를 타파한 결과로 설명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남과 북 모두 자신들의 체제를 광복의 완성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에세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정말 광복은 완성되었는가. 분단된 상태의 한반도를 과연 온전한 광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광복을 중심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분단은 결코 광복의 완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광복이 중단되거나 왜곡된 결과에 가까웠다. 주권은 회복되었으되 분할되었고, 민족은 해방되었으되 통합되지 못했으며, 국가는 수립되었으되 그 정통성은 분단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남과 북의 국가 수립은 광복의 종결이라기보다, 광복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 속에서 등장한 정치적 결과물에 가까웠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모순 위에서 출발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국가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일제 이전의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국가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민국은 분단 현실 속에서 수립된 국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광복의 결과이면서도, 광복이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상태 속에서 출범한 국가였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자신들을 조국 해방의 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분단된 한반도의 북쪽 절반 위에 세워진 체제였다. 따라서 남과 북 모두 광복의 일부를 구현했을 뿐, 광복 전체를 완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 지점에서 ‘미완의 광복’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미완의 광복은 단순히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권이 형식적으로는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국제정치와 분단 구조 속에서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 미완의 광복 구조 속에서 등장하였다. 분단과 전쟁, 냉전과 군사적 긴장, 외교적 제약과 이념 갈등은 모두 광복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파생된 역사적 결과들이었다.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는 ‘광복 이후의 역사’라기보다 ‘미완의 광복을 완성해 가는 역사’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러한 인식이 곧 패배주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미완의 광복을 직시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와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떠한 역사적 조건과 구조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광복을 이미 완결된 신화로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분단과 주권 제약이라는 현실마저 역사의 불가피한 결과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로 광복을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과제로 바라본다면, 분단의 극복과 주권의 완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물을 수 있다. 나아가 현재의 정치와 외교, 안보 현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하고, 미완의 과제를 어떻게 완성해 나갈 것인지 모색하는 출발점도 마련할 수 있다.
남북한 해방(광복)과 독립 개념 의미 그림 이미지 그래서 미완의 광복은 실패한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는가.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운명을 온전히 결정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분단이라는 구조 속에서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다시 묻는 작업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완의 광복이라는 질문은 단지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여전히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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