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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근의 역사 다시 읽기(20)] 독립운동가라는 말은 정말 맞는 표현일까
  • 기사등록 2026-07-20 07:12:24
  • 기사수정 2026-07-22 05: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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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한제국의 멸망과 근대사를 ‘피해자와 외세’라는 하나의 익숙한 프레임 안에서만 바라봐 왔는지도 모릅니다. 본지는 역사 교과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박제된 기억 뒤에 숨겨진 날것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국채보상운동 학술자문교수로 활동해 온 역사학자 허태근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묻지 못했던 대한제국 망국의 진짜 원인과 ‘기억의 정치학’을 총 4부(13장)에 걸쳐 연재(주 3회)합니다. <편집자 주>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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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7장. 독립인가 광복인가

           ① 독립운동가라는 말은 정말 맞는 표현일까

                              --------------------------------------------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이름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한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말이 처음 만들어진 의미와 배경을 알게 되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불러 왔던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나는 왜 한 번도 이 표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사 속 용어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가장 적절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이름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이름은 특정한 역사 인식이 더해지면서 널리 자리 잡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라는 말도 그런 표현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정부의 기념행사, 학교 교과서, 학계의 연구서와 일반 역사서까지 대부분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른다. 3·1운동을 이야기할 때도, 의열단과 광복군을 설명할 때도, 안중근과 윤봉길, 유관순을 소개할 때도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느새 이 말은 너무도 익숙해져, 과연 이 표현이 역사적으로 가장 정확한 이름인지 질문해 보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표현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정확한 개념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용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굳어지기도 하고, 정치와 교육, 언론을 거치면서 하나의 상식처럼 자리 잡기도 한다. 하지만 상식이 반드시 역사적 정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장에서 독자와 함께 던져 보고 싶은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국권 투쟁가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가장 정확한 표현일까.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으려 했으니 독립운동가가 맞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의 언론과 교과서, 학계에서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역사 용어처럼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엄격하게 개념을 따져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독립(獨立)'이란 원래 다른 나라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가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주권을 가진 국가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광복(光復)'은 이미 빼앗긴 주권과 나라를 다시 되찾는 것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잃어버린 빛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대한제국은 1910년 국권을 상실하였다. 

그 이후 우리 민족이 전개한 수많은 투쟁의 목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추구한 것은 독립을 새로 이루는 일이 아니라 국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엄밀한 역사 개념으로 보면 그들은 '독립운동'보다 '광복운동'을 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그들을 '독립운동가'라기보다 '광복운동가' 또는 '국권회복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더욱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장이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독립운동'이라는 용어를 모두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독립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역사 용어로 굳어졌으며 법률과 국가기념사업, 학계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그 용어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을 다시 살펴보자는 데 있다.


역사는 사실을 배우는 학문인 동시에 언어를 이해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같은 사건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군란'과 '항쟁', '사변'과 '침략', '독립'과 '광복'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 하나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도 하고, 한 시대를 이해하는 방식까지 달라지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을 다시 던져 보려 한다.

1910년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사람들은 정말 '독립운동가'였을까. 아니면 '광복운동가'였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이 두 개념을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해 왔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독립과 광복은 단순한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서 등장했으며, 그 안에는 한국 근대사가 겪었던 상실과 회복의 과정, 국제정치의 구조, 그리고 나라를 잃고 다시 되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함께 담겨 있다.

역사 속 용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다. 하나의 단어에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두려움과 희망, 절망과 의지가 함께 스며 있다. 그래서 역사 용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어의 뜻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만들어 낸 시대와 인간을 함께 이해하는 일이다.


독립과 광복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두 단어에는 나라를 잃은 절망과 다시 되찾고자 했던 염원,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적 현실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그렇다면 두 단어는 무엇이 다를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독립’이라는 말이 한국 근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립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전이 아니라 시대이다. 같은 ‘독립’이라는 말도 시대가 달라지면 담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다. 한국 근대사에서 독립은 처음부터 민족 해방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까지 사람들에게 더 익숙했던 개념은 오히려 ‘자주(自主)’였다.


자주는 유교적 정치 질서 속에서 형성된 개념이었다.

그것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도덕적 자율성을 의미했다. 개인의 삶에서도 중요했고 국가 운영에서도 중요한 가치였지만, 근대 국제정치가 말하는 ‘주권국가’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19세기 말 조선은 갑작스럽게 서구식 국제질서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청과 일본, 러시아와 서구 열강이 조선을 둘러싸고 충돌하는 가운데, 조선은 근대 국제법과 외교 질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정비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다. 전통적 정치 언어 위에 근대 국제정치의 언어가 급하게 덧씌워졌고, 그 과정에서 ‘자주’와 ‘독립’이라는 표현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작 국가의 실질적 권력을 뜻하는 ‘주권’ 개념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독립이라는 말이 공식 정치 언어로 등장한 결정적 계기는 갑오개혁이었다.

홍범14조 제1조는 “청국에 의존하는 관념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립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조선의 공식 문서에서 ‘자주독립’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중요한 사례였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근대적 민족의식의 성장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시 조선은 청일전쟁이라는 거대한 국제정치의 격랑 속에 놓여 있었다. 일본은 청의 종주권을 제거하고 조선을 자국 영향권 속으로 편입시키려 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자주독립’은 조선의 완전한 주권 보장을 위한 선언이라기보다, 청의 간섭을 제거하기 위한 일본 외교 전략의 언어라는 성격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모순은 시모노세키조약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청국이 조선의 독립 자주를 확인한다고 규정하였다. 겉으로 보면 조선이 국제적으로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조선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청의 종주권을 국제법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외교 장치에 가까웠다.


더 주목할 점은 일본이 여기서 ‘주권국가’라는 명확한 표현보다 상대적으로 모호한 ‘독립자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군사와 외교,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독립은 아직 민족 해방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제정치 속에서 조선을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언어에 가까웠다.


그러나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독립이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대한제국은 사라졌고 국권은 상실되었다. 이제 독립은 단순한 외교적 지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인간다운 존엄을 되찾기 위해 붙잡아야 했던 마지막 희망의 언어가 되었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도, 상하이 임시정부의 활동도, 만주와 연해주에서 이어진 무장투쟁도 결국은 빼앗긴 국가 주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미 나라가 사라진 이후의 투쟁을 과연 단순히 ‘독립운동’이라고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식민지 시기의 항일투쟁은 오랫동안 독립운동이라 불려 왔다. 그것은 이미 굳어진 역사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보자면, 국권이 완전히 상실된 이후의 투쟁은 단순히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진 나라와 주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광복’이라는 말이 중요해진다.


광복은 ‘빛을 다시 회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단순한 정치 권력만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정통성이었고, 민족 공동체의 존엄이었으며, 식민지 지배 속에서 훼손된 인간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광복은 독립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독립이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국가 주권을 회복하는 정치적 개념이라면, 광복은 그 정치적 회복을 넘어 민족 공동체의 기억과 존엄, 역사적 질서를 다시 되찾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문명사적 개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1945년 8월 15일을 ‘독립’이 아니라 ‘광복’이라고 불렀다.


독립과 광복의 개념 그림 이미지

사람들은 단순히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났다는 사실만 기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나라의 이름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민족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고 느꼈다. 광복은 단지 정치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잃어버린 역사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 근대사는 단순히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조선 말기의 반외세 투쟁은 아직 존재하던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역사였다. 위정척사 운동도, 동학농민운동도, 초기 의병전쟁도 기본적으로는 무너져 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당시 조선은 여전히 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왕이 있었고 정부가 있었으며, 외교와 군사 역시 불완전하나마 국가의 이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저항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려는 투쟁에 가까웠다. 위정척사 운동 속에는 외세의 침략 앞에서 조선의 정치 질서와 유교적 세계관을 지키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동학농민군의 “보국안민”과 “척왜양이”라는 구호 속에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들어 있었다.


을미의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성황후 살해와 단발령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은 단순한 복고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의 존엄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이는 농토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고, 어떤 이는 가족을 남겨 둔 채 총을 들었다. 역사책 속에서는 몇 줄로 정리되지만, 실제 그 안에는 평범한 인간들의 공포와 분노,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고 국권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라를 지키는 싸움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켜야 할 나라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항일투쟁은 독립 수호의 역사에서 광복 회복의 역사로 전환된다.


3·1운동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진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민족 공동체 전체의 선언이었다. 만주와 연해주의 무장투쟁 역시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인간들의 절규였다. 그래서 광복은 단순한 정치적 회복이 아니라 인간 회복의 역사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독립과 광복은 단순한 동의어가 아니다.

독립은 기본적으로 국가 주권의 문제를 중심에 둔 정치적 개념이고, 광복은 상실된 역사와 공동체,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다시 회복하는 문명사적 개념이다. 독립이 “나라가 홀로 서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광복은 “잃어버린 빛과 기억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립과 광복을 구분하는 작업은 단순한 용어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근대사를 어떤 구조 속에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절망과 희망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독립의 언어 속에는 나라를 지키려 했던 시대의 불안이 담겨 있었고, 광복의 기억 속에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되찾으려 했던 인간들의 절망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되찾으려 했는가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세이는 과거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오래전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숨결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이어야 한다. 역사는 바로 그 질문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본 연재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향후 단행본 출간을 전제로 일부를 선공개하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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