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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근의 역사 다시 읽기(14)] 이름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 기사등록 2026-07-05 04:45:43
  • 기사수정 2026-07-05 06: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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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한제국의 멸망과 근대사를 ‘피해자와 외세’라는 하나의 익숙한 프레임 안에서만 바라봐 왔는지도 모릅니다. 본지는 역사 교과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박제된 기억 뒤에 숨겨진 날것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국채보상운동 학술자문교수로 활동해 온 역사학자 허태근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묻지 못했던 대한제국 망국의 진짜 원인과 ‘기억의 정치학’을 총 4부(13장)에 걸쳐 연재(주 3회)합니다. <편집자 주> 


지은이: 허 태 근 

ㆍ부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ㆍ전) 부경대 사학과 교수

ㆍ사) 국채보상운동 부울경 학술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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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 이름이 역사를 바꾼다. >

       5장. 민비인가, 명성황후인가

              ④ 이름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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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왜 끝내 왕이 되지 못했을까. 

광해군은 왜 오늘날까지도 ‘군(君)’으로 남아 있을까. 

명성황후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명성황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민비’일까. 

1980년 광주는 왜 누군가에게는 ‘광주사태’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되었을까. 이처럼 같은 사람이고 같은 사건인데도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어떤 이름은 높이고, 어떤 이름은 낮춘다. 어떤 이름은 정당성을 부여하고, 어떤 이름은 반역과 실패의 낙인을 찍는다. 어떤 이름은 기억하게 만들고, 어떤 이름은 잊게 만든다. 그래서 역사 속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한 시대가 남긴 판단이고, 권력이 부여한 평가이며, 후대가 받아들인 기억의 형식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사실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사실을 부르는 이름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과 그 사건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같은 죽음도 ‘순국’이 될 수 있고 ‘처형’이 될 수 있다. 같은 저항도 ‘혁명’이 될 수 있고 ‘반란’이 될 수 있다. 같은 정치적 실패도 ‘개혁의 좌절’이 될 수 있고 ‘역적의 난’이 될 수 있다. 이름이 달라지는 순간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사람은 실제로 왕위에 올랐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반정으로 폐위된 뒤 종묘에 모셔지지 못했고, 후대의 공식 기억 속에서 ‘왕’이 아니라 ‘군’으로 남았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판단이 이름 속에 새겨진 것이다. 이름은 곧 역사적 판결이었다. 

 

명성황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전에는 왕비였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후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식민사관 속에서는 오랫동안 ‘민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민비’라는 호칭은 단순히 성씨를 붙인 표현이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의 권위를 낮추고 한 여성 정치인을 비하하는 기억의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명성황후’와 ‘민비’의 차이는 단순한 호칭 차이가 아니라, 그 인물을 어떤 역사적 위치에 놓을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1980년 광주 역시 이름을 둘러싼 싸움의 대표적 사례다.  

군사정권은 이를 ‘광주사태’라고 불렀다. 그 이름 속에는 국가 폭력과 시민 저항의 의미가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다시 불리게 되었다. 이름이 바뀌자 사건의 성격도 달라졌다. 폭동이나 소요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희생과 저항으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역사는 사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그 사건에 붙여진 이름을 통해 기억된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가, 왜 그렇게 불렀는가, 그 이름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를 침묵하게 만들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름을 읽는다는 것은 곧 권력의 시선을 읽는 일이다. 그리고 이름을 다시 묻는다는 것은 이미 굳어진 역사적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 속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권력의 언어가 되었으며, 어떻게 후대의 기억을 지배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산군과 광해군, 명성황후와 민비, 광주사태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사례를 통해 이름이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강력한 장치였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사실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름을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이름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그림 이미지우리는 흔히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기에 앞서 먼저 이름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다시 역사가 된다. 사람들은 사건 전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건에 붙은 이름은 오래 기억한다. 사람보다 이름이 오래 살아남고, 사건보다 호칭이 먼저 기억된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총칼보다 먼저 이름을 장악하려 했다. 그래서 왕, 황제, 성군, 폭군, 충신, 역적, 독립운동가, 반란군 등 호칭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미리 결정하는 정치적 언어다. 같은 인물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개혁가가 되기도 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기도 한다. 어떤 죽음은 순국이 되고, 어떤 죽음은 처형이 된다. 이름은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든다. 

 

연산군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에서 왕이 죽으면 대부분 '조(祖)'나 '종(宗)'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태조, 세종, 성종, 영조, 정조가 모두 그렇다. 이 호칭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정통 군주라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폐위된 순간 끝내 '조'도 '종'도 받지 못했다. 그는 영원히 '연산군'으로 남았다. 왕조는 그에게 왕의 이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이름 속에 정치적 판결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무너진 나라를 수습하고 대동법을 확대했으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추진하였다.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연구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름은 여전히 '광해군'이다. 평가는 달라졌지만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학자의 논문보다 이름을 먼저 기억한다. 


이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승자가 남긴 역사였다.

성공한 권력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정'이라 기록했고, 실패한 권력은 '역모'로 기록했다. 1882년의 임오사건 역시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임오군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군란'이라는 말에는 이미 무질서와 폭동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당시 구식 군인들은 오랫동안 급료를 받지 못했고, 지급된 군량미에는 모래와 겨가 섞여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배경에는 국가 운영의 실패와 군사제도의 붕괴가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 권력은 이 사건을 '군란'으로 규정하였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임오군인항쟁'이라 부른다면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이름 하나가 사건의 도덕적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명성황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민비'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에게 거부감을 준다. 일본 제국주의가 1895년 을미왜변 이후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며 황후의 권위를 약화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국가적 상징을 지우고 단지 민씨 가문의 여성으로 축소하려는 언어 전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시 조선 내부에서도 민씨 외척 세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민씨 정권' 또는 '민비'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호칭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왜 특정 시대가 특정 이름을 선택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름은 언제나 권력과 함께 움직였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사에서도 반복된다.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 세력은 자신들을 '자유와 시민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왕당파는 그들을 '폭도'이자 '왕권 파괴자'라고 불렀다. 같은 사건이 혁명이 되기도 하고 반란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혁명도 다르지 않았다. 볼셰비키는 권력 장악을 '노동자 혁명'이라 불렀지만, 반대 세력은 '무장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이후 스탈린 시대에는 과거 혁명의 동지들마저 하루아침에 '인민의 적'이 되었고, 이름이 바뀌는 순간 그들의 공적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중국 문화대혁명에서는 '반혁명분자', '우파', '반당분자'라는 이름이 수많은 사람을 사회에서 제거하는 도구가 되었다. 


총칼은 시대가 지나면 녹슬지만 이름은 교과서에 남는다. 

총칼은 사람을 굴복시키지만 이름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먼저 언어를 장악하려 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움직인 것은 사실만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의 연도와 결과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 사건에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왜 그 이름이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 누가 영웅이 되고 누가 죄인이 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기 이전에 이름을 둘러싼 권력의 기억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본 연재물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향후 단행본 출간을 전제로 일부를 선공개하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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