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본지 편집부국장)세월이 흘러도 기차 여행에는 묘한 설렘이 있다.
창밖으로 스치는 들녘의 바람, 차창에 비친 햇살, 그리고 철길의 리듬은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추억을 깨운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가던 날의 그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지 않은가.
최근 여행 트렌드는 다시 ‘기차’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60~70대 실버세대를 중심으로, 열차를 타고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로 즐기는 시티투어형 여행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성비 좋고, 체력 부담이 적으며, 무엇보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시티투어는 이름 그대로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는 관광상품이다.
해당 지역의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대표 명소와 문화거리를 순환하며 구경하는 형태다. 운영 방식은 크게 ‘노선형(순환형)’과 ‘예약제 투어형(가이드 동행)’으로 나뉜다.
서울·부산·대구·대전 같은 대도시에서는 노선형이 주로 운영된다.
하루 종일 순환하는 2층 버스를 타면, 언제든 내리고 타며 주요 관광지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반면, 중소도시에서는 주말이나 축제기간에만 운영되는 예약제 투어형이 많다.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지역 이야기를 들려주니, 문화와 사람 냄새가 함께 묻어난다.
대부분 시티투어 상품은 지자체가 운영비를 보조하기 때문에 요금이 매우 저렴하다.
지역사랑 철도여행 상품('코레일 톡' 앱을 통해 신청)의 경우에는 철도 요금이 최대 50% 할인된다. 기차를 타고 도착해 바로 버스로 환승할 수 있으니, 자가용 운전 부담이 없는 점도 실버세대에게 큰 장점이다.
부산에서는 경부선을 타고 밀양·청도·대구 등으로 손쉽게 떠날 수 있다.
밀양역에서는 영남루와 아리랑시장, 청도에서는 와인터널과 프로방스, 대구에서는 근대골목과 서문시장을 둘러보는 시티투어 버스가 운영된다.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동해선과 중앙선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동해선을 타면 경주·포항·영덕·울진까지, 중앙선을 타면 안동·영주 등 경북 내륙의 역사문화도시로 연결된다. 강원도 동해·삼척·강릉 구간은 1박2일 코스로 적당해, 가을 단풍철에는 숙박형 시티투어 상품이 특히 인기다.
철도연계 시티투어는 짧은 일정에 주요 관광지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이동 동선이 단순하고, 대부분 관광해설사의 안내가 포함되어 있어 낯선 곳에서도 불편함이 없다. 기차역에서 바로 출발하니 환승이 적고, 버스 이동이 중심이라 체력 부담도 덜하다.
무엇보다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다.
비슷한 또래의 여행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소가 된다.
앞으로 부전–마산 간 복선전철이 완공되면, 마산·진주를 넘어 순천·보성·영암·강진·목포 등 전남권까지 여행지 선택 폭이 크게 넓어질 전망이다.
남해의 바다길, 전라도의 녹차밭, 그리고 목포의 낭만항구까지… 기차표 한 장이 전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셈이다.
지금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 전국 곳곳의 명소들이 붉은 단풍으로 물든다.
이럴 때일수록 비행기나 자가용보다, 기차 창가에 앉아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이 더욱 그립다.
열차가 서서히 역으로 들어설 때,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새어 나온다.
“그래, 인생도 여행처럼… 잠시 멈춰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답구나.”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여행, 올가을엔 기차타고 시티투어 한 바퀴 어떨까.
가성비 그 이상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