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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바다의 프롬나드_현해탄의 애환 홍철훈 칼럼니스트 2025-11-12 08:30:03

홍철훈 칼럼니스트이번 호부터 몇 차례 ‘바다의 프롬나드’라는 제하의 글을 쓰려 한다. 다 아는 것처럼 ‘프롬나드(promenade)’란 말이 ‘산책’ 또는 ‘산책로’로 흔히 쓰이니 한 번 해양학의 옆길에 들어 ‘바다에 담긴 인문학’을 산책해 보려 한다.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바다는 ‘현해탄’일 것이다. 과거 일제(日帝) 시대에 우리의 애환(哀歡)이 서린 곳이라 설까? 그런데 인터넷이나 한글 자판을 두드려 보면 곧잘 ‘대한해협’으로 나오는데 이는 옳은 표현이 아니다. ‘대한해협’이 부산에서 후쿠오카(福岡)를 가로지른 ‘바다 전체’라면 ‘현해탄’은 후쿠오카 연안에서 북으로 약 60km 범위의 ‘일본 연근해’라 할 것이다. 


예로부터 현해탄은 파고가 높아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부산으로 배 타고 오면서 멀미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한해협으로 들어오는 쓰시마난류(對馬暖流)가 후쿠오카와 북쪽 약 60km 떨어진 이키(壱岐)섬 사이의 좁은 수로(水路)에 들면서 물이 몰리는 데다 수심마저 얕아(약 50m 이하) 파동이 커져 물살이 사나워진 탓이다. 그러다가도 현해탄을 지나 부산 쪽으로 오면 바다가 잔잔하였다. 수심이 깊어져서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해탄(玄海灘)’은 일본인이 쓰는 ‘현계탄(玄界灘; 겐카이나다)’에서 왔다. 다만, ‘해(海)’와 ‘계(界)’가 일본말로는 ‘카이’로 같다 보니 우리말로 전용(轉用)되면서 ‘현해탄’으로 굳어진 것 같다. 이런 현해탄이 일본 강점기에는 실로 ‘지성인의 뱃길’이었다. 당시 ‘일본’은 오늘날 ‘미국’처럼 젊은이를 향한 지성의 요람이었다. 1900년대 초에 많은 지성인이 유학 간다고 이 길을 따라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해 동경을 향했다. 노산(鷺山)이 그랬고 이상(李箱)이 그랬고 춘원(春園)이 그랬다. 도산(島山), 윤동주도 다 이 ‘뱃길’을 스쳐 갔다. 물론 비행노선이 없던 시절 탓도 있었을 것이다. 


현해탄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데는 윤심덕(尹心德)과 그녀가 1920년대 불렀던 ‘사(死)의 찬미(1926)’의 영향이 클 것이다. 당대 동경 유학까지 마치고 대표적인 성악가ㆍ가수로서 인텔리 신(新)여성이었던 그녀는 사회적ㆍ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관부(關釜)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면서 끝내 현해탄에서 실종되었다. 공교롭게도 동년배인 당대 유명 극작가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실종돼 동반자살로 알려졌다. 실로 그들에겐 현해탄이 ‘비극의 뱃길’이 된 셈이다. 


그녀가 불렀던 ‘사의 찬미’는 그녀의 비극적인 인생과 로망에 대한 화제로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져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다. 흥미로운 건, 이 노래로 국내에 축음기가 널리 보급되는 데에 영향을 미쳐 일본의 ‘엔카(演歌)’가 들어오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이 나오면서 ‘트로트’가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일설에서는 이 노래를 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현해탄은 다시 조선인들의 귀국을 향한 ‘환희의 뱃길’이 되었다. 강제 노역으로 억류되었던 사람들, 서로 헤어졌던 형제자매, 일가친척이 다시 이 뱃길을 따라 귀국하였다. 흥미로운 건, 해방된 대한민국에 새 정초석을 세우려던 유명 애국지사들은 저마다 귀국길이 달랐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미국이 제공한 군 수송기(C‑54 Skymaster)를 타고 서울 여의도 공항으로, 김구는 중국 국민정부가 제공한 군용 수송선(楚號)을 타고 인천항으로 귀국했다. 귀국길이 ‘하늘’과 ‘바다’였다는 극명한 구도만큼 이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그들과 함께 파란만장했다. 


때때로 ‘바다’는 한 나라의 역사를 반영한다. 1620년, 102명의 필그림 들은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을 떠나 美 동부 플리머스에 상륙해 오늘날 세계 최강국의 선조(Pilgrim Fathers)가 되었다. 이처럼, 바다는 모험의 세계요, 미래를 만드는 꿈의 세계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룬 저 20세기 인물들의 모험과 꿈의 노정(路程)에 현해탄은 그 한 줄기 역사를 반영한 바다가 될 것이다.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

hongch06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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